절약미덕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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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비가 미덕이던 시대는 어느새 막을 내리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절약이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소시민에겐 오히려 후자가 더 자연스럽고 마음이 편하다.
자본주의사회라고 반드시 소비가 미덕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비싼 값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 뼈아픈 체험을 한 것이다.
우선 소비가 미덕이 되려면 국제수지에 있어서 흑자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처럼 모든 경제활동이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에선 경우가 다르다.
무한소비를 위한 무한 수입은 악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무역적자를 나타내며, 이런 결과야말로 얼마나 무위한 일인가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소비의 절약도 무조건 미덕일수는 없다. 경제학에선 소비를 「임의소비」와 「기초소비」로 나누어 생각한다. 기초소비란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절약할 여지가 없는 소비를 의미한다. 절약을 위해 하루의 식생활을 두끼로 줄일 수는 없다. 옷을 벗고 다닐 수도 없다.
「임의소비」는 아직도 선택의 여유가 있는 소비를 뜻한다. 「밍크」목도리는 두르지 않아도 좋다. 「택시」대신에 버스를 탈수도 있다. 석유대신에 연탄을 쓸 수도 있다. 빈방의 전등은 켜둘 필요가 없다. 커피는 좀 덜 마셔도 좋다. 이런 것이 말하자면 임의소비다.
「기초소비」와 임의소비의 개념을 놓고 보면 절약은 누가 먼저 해야할지 자명해진다. 기초생활만을 근근 꾸려 가는 서민들에겐 소비나 절약은 미덕도 악덕도 아니다. 그들에겐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 결국 소비를 억제해야할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이다. 아니 중산층이 거의 없는 우리의 사회구조에선 고소득특권층들 자신이다. 따라서 절약은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 자신부터 솔선하고 수범해야할 일인 것이다.
처칠 수상이 영국의회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는 취임연설을 할 때 국민들은 숙연히 귀를 기울였었다. 그것은 지도자들의 도덕적인 결단을 믿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영국의 하원의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셀프 쇼퍼」들이다. 몇몇 요직의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손수 차를 몰고 다닌다. 세비가 적기 때문일까.
최근 영국에선 「크리스머스」가 지나자 「네온·사인」의 소등을 실시하고있다. 절약운동의 하나다.
「네덜란드」에 대한 「아랍」의 단유조치가 계속됐을 때 그 나라 국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런 일들은 국민들의 도덕적 결단을 서로 믿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제 모처럼의 절약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국민과 관리·「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겸손하게 신뢰할 수 있는 계기도 됨직하다. 「진짜 미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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