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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를 세계유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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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관, 서울구치소 등으로 바뀌었다가 87년 역사관으로 재단장됐다. [최승식 기자]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나오듯이 되었다가 잘 때에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좌우에 한 사람씩 힘이 센 사람이 판자벽에 등을 붙이고 두 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서대문형무소의 옥살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13㎡(약 3.9평) 남짓한 공간에 40~50명씩 들어차 서로 대화조차 허락되지 않은 공간. 1908년 일본이 침략을 본격화하기도 전에 지은 경성감옥의 활용법이었다.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잡혀온 유관순 열사는 빛이 한 줌도 채 들지 않는 이곳 독방에서 1920년 숨졌다.

 해방 이후 이름은 바뀌었지만 수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경성·서울형무소 시절에는 육당 최남선 등 친일파 인사들이 수감됐다. 5·16 군사쿠데타를 계기로 서울교도소로 개명됐다. 1967년 서울구치소로 바뀌고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시국사범과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된 양심수들이 넘쳐났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김근태 전 의원에 이르기까지 민주를 부르짖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장소가 된 셈이다.

 서대문형무소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시민모임이 발족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일 “23일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국민유공자유족회 등 50여 개 시민단체와 함께 발족식을 하고 당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국민 인식 제고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돔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세계문화유산은 있으나 일제강점기 문화재의 등재 추진은 처음이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엄승용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은 “독립운동가의 생가나 유품 등을 묶어서 등재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민들도 반기는 모양새다. 1944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조성국(90)씨는 “일본 순사들은 한국 사람을 인간 취급도 안 했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학대했다”며 “부끄러운 역사지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 추진에는 최근 우경화가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몫했다. 일본은 지난달 강제징용의 상징인 하시마(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데 이어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 편지 333점을 모아 내년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는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

 ◆향후 절차는=시민모임 측은 이르면 9월 서울시에 등재 신청 요청을 할 계획이다. 그러면 시는 검토 후 타당성이 인정되면 문화재청에 신청서류를 제출하고 문화재청은 이를 토대로 심의를 거쳐 잠정목록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청은 잠정목록에 오른 지 1년이 지난 문화·자연유산을 매년 1월 1건씩 선정해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한다. 현재 문화유산 14건, 자연유산 4건이 등재 신청을 기다리고 있다.

글=민경원·이서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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