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를 하나로 만든 심석희의 막판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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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짜릿했다. 전율이 일었다. 그제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전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엎치락뒤치락 선두다툼을 벌이던 선수들이 마지막 바퀴에 접어든 순간, 소리 없는 아우성이 전 국민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최종 주자 심석희 선수가 스케이트 날을 쭉 뻗으며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열일곱 살 소녀는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었다. 아름답고 늠름한 젊음이다.

 평균 나이 20.8세의 여성 4명이 한국 선수단에 안겨준 금메달은 단순한 1등의 징표가 아니었다. 오랜 훈련을 견뎌내며 고국에서 선전을 고대하던 국민 모두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메달을 향해 물불 안 가리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쟁 상대들을 자신감과 저력으로 물리친 당찬 패기는 한국 젊은이의 밝은 초상이다.

 스포츠는 한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종합 건강진단서다. 오늘날 올림픽이 국가 간의 소리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는 까닭이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선명한 국가의 깃발 아래 애국심과 사회단결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심석희 선수의 마지막 한 바퀴, 최후의 한걸음은 한국 사회에 드리웠던 심란하고 착잡한 그늘을 단박에 걷어냈다. 그 담대한 기상이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우리 모두 저처럼 해나갈 수 있다면 역전의 주인공 심 선수의 한마디처럼 “소름 끼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소치 겨울올림픽이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한국 대표팀은 오늘까지 여성 선수들이 따낸 4개 메달로 조촐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어느 대회보다 풍성한 이야기와 감동을 남겼다. 물론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의 후폭풍으로 잡음도 일었고 부끄러운 과거도 드러났다. 그러나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2연패의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가 지적했듯 메달 색깔에 집착하는 묵은 사고방식은 여기까지다. 4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에 등장할 미래의 심석희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큰 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