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계약서 무단 저장 … 국토부 10년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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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 개인정보 595만8303건이 10년간 무단으로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17일 밝혀졌다. 그런데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자체 서버에 거래계약서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을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밝혔다. 중개사협회는 2004년부터 계약서 작성 프로그램인 탱크21로 계약서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있다가 지난해 11월 해킹당했다. <본지 2월 17일자 1, 5면>

 국토부는 탱크21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기로 작성된 계약서 사본을 중개사협회 규정에 따라 1년만 보관하는 줄 알았다”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약서를 체계적으로 DB화한 것은 물론, 10년치를 갖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중개사협회의 계약서 DB화는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계약서 사본을 5년간 보관하도록 돼 있고 전산 보관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다. 이에 중개사협회는 ‘1년간 전산상 보관할 수 있다’는 협회 운영규정에 따라 계약서를 저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협회의 운영 시스템이라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었다”며 “협회의 규정 위반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책임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개사협회가 계약서를 DB화한 과정에 위법 사항은 없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일단 협회가 운영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보고 10년치 거래정보 중 최근 1년을 뺀 나머지 9년치 정보를 삭제하도록 시정 조치했다. 또 앞으로 탱크21을 사용하더라도 계약서가 자동으로 DB에 저장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킹을 당한 협회는 경미한 처벌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자체 규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만 물면 된다.

 한편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중개사협회에 수사요원을 급파해 해킹 사실을 확인하고 본격 수사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정석화 수사실장은 “만약 지난 10년치 부동산 매매·임대 계약 정보가 유출됐다면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어 곧바로 수사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계약서 유출 여부 확인까지는 두세 달 정도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황정일 기자,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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