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부와 나이 줄이기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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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하여 인기 선수들이 호적부의 연령을 2∼3년씩 줄이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수년 전부터 내려오는 폐풍이며, 심지어 20만원만 있으면 생년월일을 얼마든지 정정할 수 있다는 풍문마저 파다하게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풍문은 사법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으로 조속히 그 진위를 가려서 법원 판결에 대한 공신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호적은 개인의 인적사항에 관한 공부로서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다. 행정 관청인 구청·시·읍·면장이 이를 관장하고 있으나 그 감독은 지방법원장이 하도록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읍·면·구청장이 호적을 함부로 정정하여 정확성을 해치고 공신력이 저하될 것을 막기 위하여 지방 법원장의 허가를 얻어야만 정정할 수 있도록 하고 호적부 부본은 법원에 비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적부 작성의 감독 기관인 법원이 성년 여부·범죄능력 여부·병역의무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 생년월일을 정정함에는 특히 신중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과거 서울 민사지방법원에서는 호적 정정 등이 악용되는 예가 많다고 하여 일률적으로 허가를 해 주지 않아 물의를 빚은 사례까지 있었다. 이리하여 그 당시 서울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타지구로 전적하여 호적 정정허가를 받는 경우조차 있었을 정도다. 이 사실은 실제 사건을 맡은 판사에 따라 호적 정정에 대한 허가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판사 개개인에 따라 판결 결정에 개인차가 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겠으나 한 사람이라도 신중을 결한 결정을 함으로써 사법 전체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호적 정정 결과로 출생하지도 않은 아이를 1년 전에 신고한「난센스」가 빚어졌다고 하니 이는 전적으로 판사의 사실 파악이 허술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정정 결정이 옳았다면 신고 일자도 정정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판사로서는 연령 정정 신청자와 함께 의사의 연령 감정서·인우 증명서 및 착오 증명서 등이 완벽하기 때문에 이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결정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학 3년생 등이 만20세 이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며, 대학생이나 고교 재학생의 연령 정정 등은 병역문제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검토가 행해졌어야 할 것이다.
축구 협회의 경우 국제 경기에 승리하기 위하여 그 정을 알고서도 이 같은 부정을 묵인해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짜 애국심과 가짜 애국심을 혼동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아마 법관 중에도 이러한 소박한 애국심에 따라 정정을 허가해 준 일이 있을지 모르나 이것이 사법부 전체의 위신을 실추시킨 변명의 구실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축구 협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지난 17년 동안 줄잡아 1백 여명이 호적 정정을 했다고 하는데 청소년 축구대회의 출전을 위한 호적공부의 공신력 상실은 철저히 방지되어야 할 것이다.
호적 문제는 그렇잖아도 행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법부가 관리해야만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여 현상 유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왔는데 이번과 같은 호적정정 사건으로 사법부마저 믿을 수 없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오늘날 호적부가 행정 공무원에 의하여 작성되고 있어 공신력이 저하되고 있으므로 등기부와 같이 법원에서 관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도록 법원은 유도해야 할 것이다. 법원은 적어도 호적부의 공신력을 보장하기 위한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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