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쌀의 저산지가·고소매가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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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햅쌀이 출하한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수매가격이 아직 결정을 못본 채 유통마저 못하게 단속함으로써 그 당연한 귀결로 산지의 쌀값은 낮고, 도시의 소매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농촌에서는 공급이 넘치고, 도시에서는 수요가 달리기 때문에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 같은 저산지가·고소매가 현상으로 생산자인 농민에게나 소비자인 도시민에게나 다같이 불리를 주는 한편, 오직 중간 암거래상만 부당한 이득을 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정부 수매가 결정이 늦장을 부리면서 유통만 못하게끔 단속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은 중간 암거래상의 이익 증진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골탕을 먹이는 것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책 본연의 의도와는 크게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원래 농산물가격정책이란 신곡 출하기의 공급 급증으로 인한 곡가 저락을 막기 위해 획책되는 것이며, 또 이러한 가격 저락을 막기 위한 정부 수매가 연중 공급량의 조절용 재고량 확보를 가능케 함으로써 소비자 가격의 안정에도 이바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본래의 취지를 외면하고 있는 현재의 농정은 정책 부재라기 보다도 차라리 고의로 정책의 역기능을 일으키게 하려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정히 따져 정부수매가 결정에 늦장을 부리고 있는 농정 당국의 태도는 그렇지 않아도 생산가에 미급하는 산지쌀 값이 더욱 하락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나 하는 의혹을 품게 한다.
정부 당국의 제도는 수매가 인상폭을 40%내외로 잡고 있는 모양 같으나 싸다는 산지 쌀값도 이미 그 수준이상을 형성하고 있어 지금 당장 수매가를 결정하려면 인상폭을 더욱 올려 주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특히 쌀 생산자의 고충은 참으로 딱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농가의 딱한 사정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현금수입의 대종을 이루는 곡가 보상 면에서 큰 타격을 입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농가의 쓰임새는 더욱 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값이 오른 비율 이상으로 이미 비료값도 올랐고 농약대도 늘었으며 각종 생산비가 크게 올라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농가의 일손이 부족하여 노임마저 크게 상승하고 있다. 그러니 어지간한 쌀 수매 값 인상으로는 도저히 생산비를 보상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보리 경작용 밑거름마저 풀리지 않아 파종을 제때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래서 농가는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 된다. 정책은 식량 증산을 외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책 면에서는 이와 같이 번번이 중대한 차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 농가는 농가대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지만 정책은 정책대로 또 이중의 실책을 범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 농가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나 정책이 이중의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면 이는 국민 경제적 입장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정책은 당연히 산지 미가의 저락을 막아야 하고 증산 자극적인 수매가를 하루 빨리 결정 공표해야 하며, 보리 파종 적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농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식량 자급도의 향상이라는 국민 경제적 입장에서도 촌각을 다투는 중대 과제이다. 농정 당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하루빨리 지양해야 할 것임을 우리는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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