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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1> 항공 수하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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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은 오늘날 전 세계 공항에서 승리하고 있다. 멍청한 공무원이 내 꿀단지를 가져갔다.”

지난해 11월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올린 트위터 내용이 화제가 됐다. 흥미롭게도 공감보다 비아냥댄 사람이 많았다. “빈 라덴 좀 그만 우려먹어라” “규칙을 몰랐던 당신 잘못이니 징징대지 마라”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나도 도킨스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베이징(北京)공항에서 중국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다가 된장과 딸기잼을 뺏겼다. 위탁 수하물을 베이징에서 찾은 뒤 다시 부쳤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기내에 들고 타려다 사달이 난 것이다. 중국에서 유학 중이던 누이는 오매불망 고국의 맛을 기다리다 시쳇말로 ‘멘붕(멘탈 붕괴)’이 됐다.

그렇다. 빈 라덴을 위시한 테러리스트 때문에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없는 물품이 많아졌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위해 물품을 보면 무기와 폭발물이 가장 많다. 한데 이런 걸 들고 타는 용자(勇者)가 얼마나 될까? 실제로 공항 검색대에서 가장 많이 걸리는 물품은 생활용품과 액체류다.

국토부는 올해부터 기내 반입 제한 물품을 대폭 줄였다. 이제 손톱깎이와 우산·가위(날 길이 6㎝ 미만)는 들고 탈 수 있다. 국민 편의를 위한 조치라는데, 의아한 품목도 있다. 와인 따개는 허용했다. 보통 와인 따개는 한쪽 끝에 날카로운 칼이 달려 있는 데도 말이다.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구식 안전 면도기는 되는데, 일반 면도기는 안 된다.

가장 헷갈리는 건 라이터다. 국토부 지침에 따르면 라이터는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있지만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는 없다. 선물용으로 포장했고 연료가 없다면 괜찮다. 성냥은 기내 반입과 위탁 수하물 모두 안 된다. 참 복잡하다. 흡연자는 라이터 딱 하나만 주머니에 담아 가시라.

정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권고에 따라 2007년 3월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액체류와 젤류 반입을 금했다. 아직도 이 규정을 몰라 화장품이나 먹다 남은 생수, 심지어 김치를 들고 타려다 걸린 여행자가 수두룩하다. 액체류는 100mL 용기에 담아 1L 지퍼락 비닐봉투에 넣으면 기내에 반입할 수 있다. 음식물도 액체류가 아니면 문제될 것 없다. 기내식을 사 먹어야 하는 저비용 항공을 탈 때 햄버거·김밥 등을 싸 가는 알뜰 여행자도 있다.

입국할 때 휴대품 규정도 알아보자. 이건 성격이 조금 다르다. 출국할 때 항공 안전이 문제라면, 입국할 때는 검역과 세금이 관심이다. 기준은 생각보다 엄격하다. 농축산물은 반드시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해외여행 선물로 육포나 열대 과일은 생각도 않는 게 좋다.

면세 한도는 400달러다. 그 이상 구매했다면, 딴 생각 말고 신고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 공항 세관은 여행자 짐을 무작위로 검사한다. 이를 악용한 정보도 인터넷에 많이 떠다닌다. 그러나 세금 몇 푼 아끼려다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인천공항 세관에 따르면 면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신혼부부다.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을 떠난 신혼부부에게 선물 부탁은 적당히 해야겠다. 그들이 멀끔하게 공항 입국장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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