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미훈련 연기 요구 … 20일 이산상봉 적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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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접촉 북측 대표 원동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67·가운데)이 11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측 평화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원부부장은 1990년 일곱 차례의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수행원을 맡았고,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서울에도 다녀갔다. [사진 통일부]

박근혜 정부 들어 첫 고위급 남북 접촉이 12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결렬됐다. 양측은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잇따른 협의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 ▶상호 비방과 적대행위 중단 등 현안을 집중 논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오는 24일 시작되는 한·미 군사연습(키 리졸브)을 이산 상봉(20~25일) 이후로 미룰 것을 요구하며 연계 방침을 밝히는 등 쟁점 사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정회를 거듭하는 진통을 겪었다. 결국 북한은 13일 0시10분 북측 지역으로 철수했고, 차기 회담 일정 등도 잡지 못한 채 회담은 끝났다.

 회담 관계자는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은 기조연설에서 금강산에서 열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예정대로 원만히 치르기 위해 남북한이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다”며 “그 밖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북측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북측 단장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기본발언에서 “북남 모두 비방·중상 중단과 적대행위 중지를 통해 관계발전을 이뤄야 한다”며 “특히 북측 ‘최고존엄’(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지칭)을 훼손하는 행위를 남측 당국이 책임지고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중단도 요구했다.

 북측은 우리 측의 이산 상봉 문제 해결 제안에는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 추석 상봉을 추진할 때 약속한 대로 추가 상봉과 화상장비를 통한 만남은 물론 상봉 정례화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했다는 게 회담 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은 대신 2007년 남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한 회담 개최를 요구했다. 회담 관계자는 “우리 측은 이산 상봉 이후 금강산 관광 재개 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측은 관광 재개 회담의 날짜를 남측이 제시해야 한다고 버텨 팽팽하게 맞섰다”고 전했다.

 북한이 들고나온 상호 비방 중단 문제는 회담 타결에 최대 걸림돌이었다고 한다. 북측은 서해 5도 지역을 비롯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 살포 중단 등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이미 지난달 말 선제적인 행동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최근 평양 유치원 방문 때 구둣발로 방에 들어간 장면을 담은 노동신문 사진을 일부 남한 언론이 비판한 걸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 김규현 남측 수석대표는 “남측은 언론 보도를 당국이 통제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라며 북한 관영매체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비방을 퍼부은 점은 지적했다.

 북측은 ▶회담을 비공개로 하고 ▶언론에도 내용을 알리지 않도록 요구했고 우리 대표단은 중간 브리핑을 하지 않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회담 관계자는 “이번 고위 접촉은 구체적인 현안을 합의문에 담는것보다는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짜려는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고위 접촉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탐색전이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집권 2년차인 올해 대북정책의 골간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김정은 역시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으로 어수선한 내부를 추스르고 무엇보다 대미·대중 관계를 진전시키려면 남북관계의 복원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안을 실질적으로 논의할 청와대와 북한 국방위 간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금강산 이산 상봉에서 적신호가 켜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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