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전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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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포츠는『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근대 올림픽을 부흥한 프랑스의 체육가 쿠베르텡이 한 말이다. 그는 스포츠가 상업화·정치화하는 폐해를 경고하기 위해『스포츠 개혁 헌장』이라는 것을 발표한 일도 있었다.
스포츠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백년 전쟁 때 영국은 서민에게 구기를 금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활쏘기만을 장려했었다. 프러시아는 나폴레옹과 싸우면서 모든 사람에게 기계체조를 강요했었다. 워털루전쟁에서 영국이 나폴레옹을 격파하고 승리한 것은 결정적인 시점에서 프러시아 군대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이것을『이튼·칼리지의 그라운드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라운드란 바로 운동장을 말한 것이며, 그것은 스포츠를 칭찬한 것이었다. 크리미아 전쟁에 동원된 런던의 청년들은 시가를 달리며 몸의 컨디션을 조절했다고도 한다.
현대의 몇몇 국가들은 스포츠를 국책으로 적극 장려하고 있다.「체육상」이라는 장관이 있을 정도다. 그것은 히틀러가 스포츠 열광주의자였던 것과 일맥이 상통하는지도 모른다. 전체주의 사회에선 스포츠를 의식적으로 국민 오락 화하고 있다.
그것은 집단을 손쉽게 단합시키며, 이런 단합은 곧 조직활동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포츠를 통한 군집 미 따위는 한 인간의 개성을 약화시키며, 그것은 곧 전체적인 통치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그랬고,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쿠베르텡이 지적한 스포츠의『검은 얼굴』은 그런 것을 지적한 것 같다.
그러나 스포츠의 참 뜻은 그런 어마 어마한 데에 있지는 않다. 스포츠의 어원인 라틴어의 Deporture나 프랑스어의 Desporter는「유희」라는 뜻을 갖고있다.『어렵고 귀찮은 일에서 주의를 잠시 다른 데로 돌린다』는 의미까지도 그 속엔 포함돼 있다.「즐거운 노동」인 것이다.
스포츠가 인간의 유희에 기여하는 면은 바로 그런 즐거움에 있다. 개성이 존중되고, 한편으로는 신체의 쾌조를 이룰 수 있는 면은 스포츠의 선한 얼굴에 해당된다. 현대의 생활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많은 정신력, 더 능률적인 동작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생활을 반복하게 한다. 오늘의 스포츠는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평가되어야할 것이다. 전국 체육대회는 선수들만의 행사에서 벗어나 국민의『즐거운 생활』과 연결되는 행사로 발전할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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