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퇴직연금, 다리 풀렸나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노후 안전판이 돼야 할 퇴직연금이 영 불안하다. 갈수록 낮아지는 수익률 때문이다. 올해는 수익률이 2%대까지 떨어질 거란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다루는 금융회사 47곳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3.82%에 그쳤다. 금융감독원 비교공시 자료를 이용해 퇴직연금 적립액의 70%가 몰려 있는 확정급여(DB)형 원리금 보장상품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익률이다. 2012년(4.62%)과 비교해 수익률이 0.8%포인트나 떨어졌다. 2010년 5%대였던 퇴직연금 수익률은 2011년과 2012년 4%대 중반, 지난해엔 3%대로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을 12조원(17%) 넘게 늘리며 몸집을 키웠지만 수익성은 뒷걸음질쳤다.

 금융사별 수익률은 도토리 키 재기다. 흥국생명(4.23%)과 대신증권(4.2%)을 포함한 11개사가 간신히 4%대를 기록했을 뿐이다. 퇴직연금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상위 10개 대형사 중 4%대를 기록한 곳이 전무했다.

 수익률이 신통찮은 건 기본적으로 시장금리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동시에 운영하는 금융회사의 영업 전략도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다. 흥국생명 나창주 퇴직연금본부장은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은 예금과 국공채, AA 이상 우량 회사채에 주로 투자해 운용 실적이 비슷비슷하다”며 “다만 브랜드보다는 금리로 승부해야 하는 중소형사가 더 공격적인 금리를 제시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퇴직연금을 몰아줄 그룹 계열사가 없고, 규모가 작은 중소형 보험사나 증권사 수익률이 좀 더 높게 나온 이유다.

대신증권 이영철 퇴직연금본부장도 “적립금 규모가 너무 크면 자산배분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며 “운영하는 입장에선 보통 5000억원 안팎이 적절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3%대 수익률은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턱없이 모자란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수익률이 30년 동안 5%를 유지해도 은퇴 뒤 매월 받을 수 있는 연금은 현재 소득의 16.1%에 불과하다. 수익률이 3%로 떨어진다면 이 비율은 12.6%로 더 떨어진다. 흔히 국민연금이 퇴직 뒤 쌀을 사먹는 데 쓸 돈이라면, 퇴직연금은 반찬 살 돈에 비유된다. 하지만 수익률이 이렇게 떨어져서는 반찬값 대기도 빠듯할 지경이다.

 문제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어 수익률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거란 점이다. 한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 부장은 “1년 전엔 정기예금 금리가 3%대 중반이라도 됐지만 최근엔 2%대까지 떨어졌다”며 “퇴직연금이 보수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수익률은 2.8~2.9%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대 후반 수익률은 한국은행이 올해 전망한 소비자 물가상승률(2.3%)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저금리 탈출을 위해 원리금 보장이 안 되는 실적배당형으로 갈아타라고 무작정 권할 수도 없다. 지난해 퇴직연금 실적배당형 상품 평균 수익률은 2.74%(확정기여형 기준)로 원리금 보장형에도 한참 못 미쳤다. 주식을 40%까지 편입하는 구조이다 보니 주식시장의 오르내림에 따라 수익률 진폭이 크다. 코스피 지수 상승률이 9.4%에 달했던 2012년엔 6.57%의 비교적 고수익을 냈지만, 코스피 상승률이 지난해 0.72%로 급락하자 수익률도 고꾸라졌다.

 전문가들은 퇴직까지 남은 기간과 자신의 투자성향에 따라 적절하게 실적배당형의 비율을 조정하기를 조언한다. 예컨대 퇴직까지 5년 정도 남았다면 안정성을 위해 원리금 보장형을 고집하는 게 낫지만, 젊은 근로자라면 퇴직연금 일부를 떼서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만하다. 실적배당형 상품은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이를 감내할 만한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신한은행 연금사업본부 윤상규 부부장은 “그동안 쌓아둔 목돈은 원리금 보장형에 계속 두되, 앞으로 들어올 퇴직연금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립식 펀드처럼 투자하는 걸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확정급여형은 회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한다.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는 ‘퇴직 직전 월급.근무 연수’로 이미 확정돼있다. 적립금 운용 결과에 따라 회사가 부담할 금액이 달라진다. 확정기여형은 회사가 연간 임금의 12분의 1을 근로자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주고, 운용은 근로자가 직접 한다. 운용성과에 따라 퇴직급여가 늘거나 줄어든다. 운용과 관련한 위험을 근로자가 안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