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노사관계 전망] 새정부 정책 노동계에 힘 실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노사관계도 크게 변할 전망이다.

노동부 관계자들조차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하루 전까지 마라톤 회의를 할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 파장이 큰 정책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노동부의 구상에 대해 "자신감있게 추진하라"고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우선 산별교섭체제 정착을 위해 정부가 법규를 정비하는 등 사전정지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의 구상대로 산별교섭이 되면 같은 업종 내의 여러 기업 노조들이 동시에 총파업을 벌여도 합법화된다. 현재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로 다른 사업장이 동조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그러나 산별교섭 체제 하에서는 같은 업종 노조들이 한꺼번에 파업을 벌일 수 있다. 파업이 잦으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가 내놓은 산별교섭 방안 자체의 결함도 눈에 띈다. 당장 2007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두개 이상의 노조에 전임자도 그만큼 많아진다. 노동부의 안에는 이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지금처럼 사측이 부담하도록 할지, 기업노조 또는 상급단체가 주도록 할지 정리돼 있지 않다.

또 복수노조의 상급단체가 서로 다를 경우 이들이 들고 나오는 상급단체의 교섭 내용을 어떻게 사업장에 적용할지에 대한 대안도 없다.

노조의 쟁의가 제한되는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를 축소하고, 이들의 쟁의행위를 보호하겠다는 구상도 논란거리다. 필수공익사업장은 전기.통신.병원.정유 등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의 파업이 경제에 주는 충격은 일반 기업의 파업과는 강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재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의 성격을 감안하면 결국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기울 수 있다는 얘기다.

퇴직연금제 도입은 현실을 무시한 면이 많다. 계획대로 모든 사업장에 도입되면 당장 자영업자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예컨대 식당.이발소.카페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종업원의 퇴직연금을 적립해야 한다. 자칫하면 의약분업 사태 때처럼 시민의 저항을 부르는 민감한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노동부는 대통령직 인수위가 가동될 때만 해도 "비정규직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여 만에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경영계는 이에 대해 "각 사업장은 비정규직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실업률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손배소와 가압류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불법행위로 인한 기업의 피해에 대해 형사소송은 몰라도 민사소송까지 제한하는 것은 기업이 노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없애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부의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노사관계는 교섭이 아닌 투쟁의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이는 곧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