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라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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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드디어 「이디오피아」의 「하일레·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되었다. 따지고 보면 별로 놀랄 것도 없다. 「이디오피아」 군부로서도 정권 강화의 정석에 따른 것뿐이겠으니 말이다. 기이하게도 근래 권좌를 쫓겨난 원수들의 예는 많다. 서독의 「브란트」 수상, 미국의 「닉슨」 대통령, 그리고 이번의 「셀라시에」 황제. 각기 경우는 다르다. 그러나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은 마찬가지다. 특히 「셀라시에」 황제의 경우에는 애상마저 느끼게 된다.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제2백25대 후예, 「왕 중 왕」,「신의 아들」등의 칭호 속에서 근 반세기 동안이나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오던 그였다. 아무도 감히 대들지 못하던 때의 「뭇솔리니」에게 침을 뱉었다는 신화를 낳기까지 한 그였다.
아무리 그가 「이디오피아」의 오늘의 빈곤을 재촉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디오피아」에서의 유일·최고의 우상임에는 틀림없었다.
비극은 그 스스로가 신성 불가침이라는 착각 속에 너무나 오래 안주해 왔다는데 있다.
하기야 그는 2차 대전 중에 「이탈리아」에 의해 한때 폐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곧 복위되었다. 지난 60년에도 「쿠데타」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황제에 대한 국민의 충성이 「쿠데타」를 실패로 끝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81세의 그는 이제는 너무나도 늙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권위의 상징이던 두마리의 청동 사자로 잠식된 왕좌도 너무나 미약한 것이다. 다만 2월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그를 폐위시키는데 8개월이 걸렸다는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이 그만큼 뿌리 깊었다는 증거도 된다.
지난 8개월 동안 군부는 조심스럽게 「셀라시에」 황제의 「베일」을 하나 하나 벗겨 나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민 앞에 보여준 황제의 소안은 너무도 추악한 것이다. 『통치자란 언제나 신비 속에 제 얼굴을 숨기고 있어야 한다.』 「드골」이 남긴 말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까놓고 보면 약점 투성이다. 어느 사람에게나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은 자기네 우상에게는 티끌만큼의 약점도 없기를 바란다. 통치자에게서 추한 표정을 찾아낼 때 국민의 충성은 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국민 앞에 드러난 황제의 마지막 얼굴에는 부패와 무능만이 새겨져 있었다. 만약에 민생이 그토록 빈곤에 허덕이지만 않았더라도 「셀라시에」는 끝까지 그 신비의 「베일」을 잘 지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의 빈곤은 그의 책임만은 아니다. 다만 「이디오피아」의 군부나 국민에게도 하나의 「스케이프고트」는 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폐위에서 역사의 비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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