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6)제40화 기독교백년(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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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교정책>
1884년 우정국사건으로 말미암아, 공식적으로 처음 입국한 의사이며 선교사인, 「알렌」은 서양의학에 의한 의료선교를 할 수 있었다. 또 선교사들이 계속 입국함에 따라 복음전도는 물론이고 자선사업과 함께 교육기관을 설립, 현대 서구식교육을 통해 선교사업을 추진했다.
계속적으로 선교사들이 오게 되자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어린 선교국인 한국에서의 선교를 보다 더 능률적으로 효과 있게 하기 위해 선교정책과 방법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각 교파가 취한 선교정책은 똑같지는 않았다. 장로교는 정부의 비호 아래 선교사업을 시작한 반면, 감리교는 이보다 공세적이었다.
장로교의 선교정책은 정부의 호감을 사가면서 선교사업에 방해된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힘을 기울였다. 국립병원의 설립을 통하여 발붙일 터를 얻어 현상유지와 수구파의 반대를 피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대규모의 선교사업을 계획하지 않았다. 선교본부에서도 거기에 따라 인원과 학업비를 증가시켜주지 않아 자연 신중성을 띤 보수적인 정책을 쓰게 되었다.
교감리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매클레이」가 한국감리교 선교회의 초대회장으로 임명된 까닭으로 해서 일본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감리교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에는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보내는 일본인의 소갯장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입국한 감리교 선교사들은 한인들을 접촉하기가 어려웠던 초입국기에도 일본공사관과 관계된 일본인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개시하였고 일본영사의 집에서 집회하기도 했다.
1886년의 감리교 연차보고서를 보면 한 집회에 열 두사람 정도가 참석했다고 되어 있다. 생각하면 당시 한국사람을 상대한 선교가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한국사람들의 편견을 깨어버리기 위해 시내 여러 곳에다 병원과 진료소를 세웠고 이미 앞에 말한대로 수도 중심부에 최초의 신식 교육기관을 세웠던 것이다.
이 교육기관은 남자만이 아니라 부녀자들까지를 포함한 폭넓은 교육업이었고 그에 따라 선교본부에서도 인원과 재정을 지원하는 적극적 태도로 나왔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정부와 정면 대결 또는 충돌을 피하고 그 시책에 묵종으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감리교 선교사들은 자기네들이 설립한 자선기관을 통해 점차 일반민중의 신임을 얻게되어 한국선교사업의 뿌리를 깊이 박게되었다.
한국선교는 개신교의 선교사업지역 가운데 가장 연천한 곳이기 때문에 자연 다른 곳에서 사용하였던 선교정책을 참고하여 이 땅에 알맞은 방법을 강구했던 것이다.
미국의 감리교와 장로교가 이 땅에 선교사를 보내어 선교를 시작한 다음 계속하여 만주와 「캐나다」 영국 그리고 간접적으로 일본을 거쳐 여러 계층의 선교사들이 모여들어 선교하게 되니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감리교의 진보적인 것과 장로교의 보수적인 방법이 두드러진 방법이지만 한국개신교가 선교백년이 못되어 오늘과 같이 급속도로 성장한 원인 중 하나는 소위 「네비어스」방법을 채택,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얘기되고있다.
이 「네비어스」방법이란 당시 중국산동성 지부에서 선교하고 있던 「존·네비어스」 선교사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네비어스」선교사 부부는 1890년 한국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2주일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국선교사들이 명심하고 실천해야할 선교방법의 원칙을 몇 가지 일러주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첫째 자립선교였다. 이것은 신자 하나 하나가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한 몫의 일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성서를 가르치고 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자립정치였다. 교회의 운영과 기구 및 조직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능력범위 안에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한국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첫번쩨 시도라고 하겠다. 자신들의 총의를 모아 교회를 운영하고 대의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세째는 자립보급이다. 교회운영이나 선교활동이나 교육이나 자선사업 등 모든 사업을 경영하고 추진할 때 자기 실력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고 외부원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배당을 건축하든지 학교를 세우든지 자선사업체를 운영함에 있어 자신들이 헌금하고 기부해서 힘에 맞게 일을 해가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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