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막아야할 파국적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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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5 저격 사건 이후 한·일 관계는 날로 악화의 도를 더하여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국교 정상화 이후 이렇게까지 악화된데에는 양국 지도층 일부 인사들의 경솔한 발언과 양국 국민 가운데 심어진 뿌리깊은 감정적 대립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한·일 양국은 73년8월의 김대중씨 사건 처리를 에워싸고 양국 국민들에게 의식상의 혼란을 부식해온 감이 없지 않으며, 정부 당국자 사이에서도 신중을 결한 설왕설래로 신경질적인 대립을 거듭함으로써 감정적 대립을 심화시킨 것 같다. 이처럼 축적된 상호 불신적인 언사가 국민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고, 폭력적인 「데모」 사태로까지 번지게 한 것임을 냉정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난 6일에는 급기야 격앙된 한국 민중의 일부가 일본 대사관까지 침입하여 기물을 파손하고 일본 국기를 찢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서울과 동경에서 각각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한데 이어 정식 외교 문서를 전달하여 ①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고 ②적절한 피해 보상을 해주며 ③관계자를 처벌하고 ④재한 일본인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앞서 신속하게 ①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②범인을 의법 처벌하며 ③일본측 피해를 보상하고 ④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했었다.
한국 정부가 이성을 잃은 일부 「데모」 군중의 이 같은 「난동」 행위에 대하여 신속히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이 같은 난동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은 양국 관계의 파탄을 막기 위해 당연하면서도 용기 있는 대응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 정부의 일부 요로 당국자가 제아무리 우리의 비위를 거슬리는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항의나 시정의 요구는 정상적인 외교 통로를 거쳐서 행하는 것이 이성 있는 태도요, 문화 민족으로서의 자세일 것이다. 어떠한 분쟁에 있어서도 감정이나 폭력에 호소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안될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야기될 불행한 사태로 이득을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적인 북괴 등 제3자일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매스컴」 등을 통해 전해지는 일본측의 불쾌한 언동에 대하여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민족 감정의 발로로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어떤 동기에 의해서든지간에 폭력이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며 이와 아울러 그로써 초래될 한·일 관계의 파탄이 북괴만을 이롭게 한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시 민이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할 경우, 60만 교포가 살고 있는 일본 안에서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깊은 고려가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반일 「데모」의 난동화를 막고 지난 6일의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선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하는바,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양국간의 모든 계쟁점을 외교 「채늘」을 통해 순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의 정부 당국자는 물론,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일반 대중의 민족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일절의 자극적인 언동을 삼가야 하는 것이다. 서로 따질 것은 따지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여 최근의 극한적 사태가 한·일 관계의 장래를 도리어 극적으로 호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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