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전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은 지난 4일 동독과 수교협정을 맺었다. 이것은 미국이 분단국의 쌍방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최초의 선례인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이데올로기」문제로 갈라진 분단국들에는 하나의 「전례」가 될지도 모른다.
『쌍방화해→쌍방「유엔」 가입→쌍방수교』는 이제 강대국들이 기대하는 분단국문제 해결의 한 도식이 되기 쉽다. 우선 미·동독수교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연립정권」으로 등장한 서독의 「브란트」 수상은 70년8월12일 「모스크바」를 방문, 독·소 조약을 조인했다. 현재의 「유럽」제국 국경선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약속하는 조약이었다. 말하자면 「스테이터즈·코」(현상동결)를 선언한 것이다. 또 그해 12월18일 서독은 그 유명한 「오데르-나이세」선을 인정하는 조약을 「폴란드」와 맺었다.
이와 동시에 서「베를린」과 서독의 자유통행, 서「베를린」시민의 동독방문 등이 실현되었다.
한편 미·영·불·소 등 4강국은 71년9월 「베를린」4대국협정에 가조인을 했다. 서독이 대소·대「폴란드」조약의 비준을 끝낸 72년 4대국은 본 조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기초 위에서 양독은 서슴없이 서로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동서독 정부를 대표하는 차관급의 회담이 잦아지면서 동서「베를린의 전화선연결, 쌍방의 우편·전신관계개선, 또 일반 교통협정 등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실질적인 관계개선의 조치들이었다. 결국 1972년12월21일 양독은 서로「기본조약」을 정식 조인했다. 동서독은 적대관계에서 선린과 공존의 관계로 바뀌었다. 「기본조약」의 주요골자는 평화공존과 무력 불행사의 약속이었다. 또 양독은 경제·과학기술·보건·공해방지 등에도 적극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다.
지난해 9월18일 동서독은 「유엔」동시가입을 실현했다. 미국은 당시 이것의 공동제안국이 되었었다. 동독은 이와 때를 같이해서 종래의 독립상태에서 급속하게 벗어났다. 「벨기에」·영국·「이탈리아」·「프랑스」의 승인을 받았다. 일본도 역시 승인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양독의 「유엔」 가입이 실현되기 한달 전에 벌써 「유엔」주재 동독대표단의 일원을 만나 대사관자리를 물색하러 다녔었다. 작년 8월27일엔 미국무성 관리들이 동독을 방문한 일도 있으며, 그 다음달엔 동독관리들이 「워싱턴」을 찾았다. 미국과 동독은 양독의 화해와 함께 이미 적대국 사이가 아니었다.
미·동독사이의 협상엔 2차대전배상 문제가 어려운 고비였다.
동독은 「제3제국」의 후계가 아닌 「새로운 독일」이라는 명분으로 배상을 거부했다. 서독은 벌써 1952년에 그 배상문제에 동의했었다. 이런 동독의 주장은 끝내 미국에 의해 거부되어 다시 협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든 분단국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 관변의 한 책임 있는 관리는 벌써 『동서독의 전례』를 다른 분단국문제와 결부시킨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 의중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