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학|「조지·슐츠」<전 미 재무부장관·백악관 경제정책심의회의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다음은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미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바 있는「조지·슐츠」씨의 『정치와 경제학』을 간추린 것이다.「슐츠」씨는「시카고」상대대학원장에 재직하다가 69년 노동장관으로 발탁된 이래 경영·예산청장 재무장관을 거쳐 현재는 백악관 경제정책심의회의장으로 일하고있다.
따라서 그는 경제학자의 순수한 현실분석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어떻게「스포일」되는가를 직접 체험한 셈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체험에서 우러나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편집자 주>
학자들이「정치경제학」이란 말 대신「경제학」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부터였다.
내가 알기로는「앨프릿·마셜」이「경제원론」이란 제명의 책을 낸 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해서 그 이전의 경제학은 정치학의 한 부분 내지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취급되었고 그 결과 학문의 명칭도 정치경제학이었던 것이다.
한데 대부분의 경우 어떤 학문이 모체로부터 전문화되어 독립되더라도 기본적인 연대자체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경제와 정치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는 비록 학자들에 의해 엄격히 분류되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바탕은 상당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은 그동안 독자적인 분화를 거듭, 정치적 현실을 배제한 몰가치적 분석에 충실해왔다.
말하자면 경제학자의 학문적인 경제현실 분석은 정치가들이 요구하는바 각종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조화라는 측면을 깡그리 무시한 채 수행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정책결정에 임하는 정부관리와 기타 인사들은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하나의 참고자료 정도로 간주할 뿐이다.
사실 미국의 경우 경제정책을 비롯한 각종 중요정책의 발의는 이익집단의 대표적 단체인 정당에 의해 제기된다.
이들은 자기가 보호육성하기를 바라는 특정분야의 산업에 대해 감면 세 조치나 경쟁의 배제, 혹은 특혜적 보호관세를 창설하려든다.
이에 따른 국민경제 전체의 파급영향이나 외국과의 관계 따위는 이들의 알 바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본 자원배분의 우선 순위나 지향해야할 산업구조 같은 것도 일체 고려되지 않는다.
사실 이와 같은 근시안적 제의가 떳떳하게 입법화되었던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행정부의 각부처가 새로운「패턴」의 이익집단구실을 한다.
예컨대 농무성은 모든 걸 농민의 편의에 좇아 결정하려들고 상무성은 국내산업, 국무성은 외국과의 우호관계를 정책결정의 척도로 삼으려한다.
따라서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정부 각 부처의 이와 같은 작용은 이익집단의 그것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할 것은 의회의 각종 위원회다.
어떤 경제학자가 몰가치적 분석에 따라 3개월 후에 파멸적인 불황이 닥쳐온다고 경고했다 치자.
이에 대비한 대응책을 마련할 경우 정당과 행정부 안의 각 부처로부터 오는 압력 외에 의회의 각 위원회가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응책을 변형시키려고 덤비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상원내무위에는 13명의 의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l2명이「미시시피」서부지역 출신이다.
만약 미국전체를 위해 서부지역에 약간의 불이익을 강요하는 정책이 제기된다면 내무위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결과는 너무나 뻔한 것이다.
경제학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이론「모델」이 사회에 대해 어떤 기여를 하자면 정책을 통해 실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나 제언은 사회에 내재하는 비경제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요인들을 무시한 채 작성된다.
예를 들어 원유파동이 일어났을 때 순수경제학자들의 눈길은 원유의 산술적 수급에만 미쳤을 뿐, 산유국과 미국의 관계라거나 여기에서 비롯되는 세계정치의 역학관계는 무시했던 것이다.
국내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면직 류의 수입문제가 제기될 때 이들은 비교생산비나 산업구조의 장래는 고려하지만 중서부지역의 「표밭」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의 제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의 논리와 추 단은 정책의 항로를 결정하는 입안 가들에게 가장 과학적인 지도와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