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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뛰어드니 골목 한식당도 함께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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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인분만 짓는 ‘쌀가게 by 홍신애’의 현미밥.

사람들이 요즘 한식에 돈 쓰기를 전처럼 꺼리지 않는다. 대기업이 한식업에 진출하면서 한식 시장이 넓어진 결과다. 김종민 FC전략연구소장은 “‘제대로 된 한식을 먹고 싶다’는 한국인의 본능을 대기업이 건드렸다”며 “한식을 즐기는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가로수길 한식집 ‘달식탁’에서 만난 이은선(33·서초구 반포동)씨는 “모임 장소가 일식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모던한 한식집으로 최근 많이 바뀌었다”며 “한식집은 인테리어나 음식 차림이 깔끔하지 못해 모임용으론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깔끔하고 트렌디한 한식집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대기업이 키웠지만 혜택은 이들 기업만 받는 게 아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특색있는 한식집도 속속 생기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대기업 한식집처럼 젊고 세련된 식당들이다.

 가로수길의 한식집 ‘달식탁’도 그런 식당 중 하나다. 특이한 인테리어로 우선 눈길을 사로잡고 독특한 메뉴로 감탄을 자아낸다. 산업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실물 크기 말 조각상 조명과 천장에 박힌 수천 개의 전구 부케는 마치 갤러리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메뉴는 어디선가 본듯하면서도 새롭다. 이곳 유지영 대표의 어머니인 순창지역 고추장 명인이 직접 담근 고추장과 이를 찍어 먹을 수 있는 마른 멸치, 깨끗하게 한장씩 솎아낸 쌈채소가 대표적이다. 들깻잎과 순창고추장삼겹살구이(2만9000원), 부추문어쌈장밥(9000원)이 인기다. 유 대표는 “기존의 분식, 밥집, 고급 한정식집 식으로 나뉘어 있던 한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한식집”이라고 말했다.

 달식탁 뿐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젊은 한식집이 많이 생겼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도 가로수길에 22석 규모의 작은 밥집 ‘쌀가게 by 홍신애’를 열었다. 가게에 도정기를 들여놓고 그날 사용할 만큼만 매일 도정해서 쓴다. 30~40대 여성에게 인기가 좋다. 메뉴는 9900원짜리 정식 한가지다. 밥·국·고기반찬과 세 가지 밑반찬, 그리고 쌈채소와 함께 홍씨 고조할머니 때부터 내로온 비법의 두부 쌈장을 내놓는다. 홍씨는 “찾는 사람이 많다”며 “하루 100인분만 만드는데 점심부터 시작해 초저녁이면 다 소진된다”고 말했다.

 세련된 가정식을 선보이는 한남동 ‘파르크’는 친구지간인 박모과·우지민씨가 함께 만든 한식당이다. 외국생활을 오래한 박씨가 어머니가 없을 때도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아예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워 가게를 낸 것이다. 메뉴는 크게 채식·해물·육식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틀마다 메뉴가 바뀐다. 요즘 인기 있는 메뉴는 굴떡국(1만1500원)과 제주도은갈치구이(1만7000원)이다. 박씨는 “지금은 점심만 운영하지만 곧 저녁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산의 고급 한식집 ‘품 서울’로 유명한 요리연구가 노영희씨가 만든 ‘비스트로 품’(삼성동)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노영희의 철든부엌’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지난해 11월 이름을 바꿨다. 요일별로 메인메뉴가 바뀌는 도시락(3만800원부터)과 그날그날 들어오는 생선에 따라 달라지는 ‘오늘의 생선조림’(3만3000원), 묵밥(1만8700원)이 있다.

 연희동의 한식 주점 ‘이파리’는 연남동 닭 전문점으로 유명세를 탄 ‘최사장네닭’의 최원석 사장이 연 집이다. “제대로 된 한식 음주 문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먹음직스러운 김장보쌈과 전 등을 깔끔하게 낸다. 전국 양조장에서 들여온 전통주도 다양하다.

글=윤경희·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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