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위기의 책임은 선진국의 「에고이즘」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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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각국은 74년에 접어들면서 거의 동시에 경기 하향국면을 맞았다. 그리고 6월 달에 접어든 지금도 「커브」는 반전되지 않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주요 경제대국들이 이와 같은 불황의 책임을 원유가 인상에 지운다는 점이다. 산유국의 난폭한 질서파괴만 없었던들 세계경기는 아직도 호황을 구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당치않은 얘기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있는 각종 경제적 위기는 경제대국들의 「에고이즘」때문에 빚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주 「파리」에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각료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기껏 이뤄놓은 성과란 『앞으로 1년간은 무역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점차 심화되어 가는 「에너지」 고가시대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논의조차 없었던 것이다.
선진국과 석유 소비국의 막대한 원유적자가 산유국의 외환보유고를 해마다 높여놓을 경우 세계경제의 장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이와 같은 「오일·달러」를 환류시키는 방안이다.
선진국으로부터 공업화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데 사용하건, 아니면 개발도상국에 빚 놀이를 하건 간에 「오일·달러」가 산유국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으면 세계경제는 단박 빈혈상태에 빠지게 된다.
유동성의 부족은 무역을 근본적으로 줄여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도 선진국들은 현재 엉뚱하고도 근시안적인 환상에 젖어 있다. 수출을 늘림으로써 원유적자를 메우려고 갖은 수단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OECD 각료 이사회의 무역전쟁 중지 결의는 이러한 환상의 산물인 셈이다.
주요 경제대국의 정책담당자들은 경기의 예측에서도 커다란 실수를 범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세계경기는 올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되어 빠르면 내년 초에는 다시 「붐」을 맞을 것이라 한다.
무려 20%나 삭감된 것으로 보이던 원유공급이 다시 원활해 졌고 고 가격체계도 차차 틀이 잡혀가고 있으므로 세계경제의 약점은 「이미」치유되었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73년 초이래 중요 공업국가에서 소비·투자수요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 했다.
소비·투자수요의 하락은 특히 「오일·쇼그」를 거치면서 더욱 예각적인 하향을 보여왔다.
이것은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라는 「날씨」에는 천둥과 폭우사이에 상당히 긴 「시간격차」가 끼이곤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세계각국은 수출증대로 원유적자도 메우고 투자수요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감이 집약되어서 『세계경기는 조만 간에 회복될 것』이라는 신앙을 낳았다.
그러나 문제를 거시적인 총계개념에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어떤 나라가 원유적자를 메울만한 수출흑자를 얻자면 다른 어떤 나라가 그만큼 무역적자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유국의 「오일·달러」가 환류 되지 않은 채 누적되기만 하는 마당에 모든 나라가 『수출증대로 원유적자를 메운다』는 것은 근본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또 주요 경제대국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임금 「인플레」도 큰 문제이다.
이것은 「에너지」가격의 상승이 각종 물가의 연쇄적 상승을 초래한 후 이제서야 노동자들의 생계비 문제로 번졌다는 뜻인데 이와 같은 물가-임금의 순환적 반응은 악성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세계각국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른바 총수요 억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인플레」의 고삐도 잡고 환율의 안정성도 지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총수요의 억제는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소비·투자수요를 더욱 줄여 불황을 한층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세계경제가 이 모든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자제와 협조로 전체의 균형에 이바지하는 것뿐이다.

<영「이코너미스트」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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