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와 일본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루손」(Luzon)은 「필리핀」원주민의 언어이다. 『배를 젓고 있다』는 뜻. 오늘날, 「필리핀」제도의 가장 큰 섬인 「루손」도가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에는 유래가 있다. 「스페인」사람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들은 한 토착민에게 이 섬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작은 통나무 배(船) 위에 앉아 있던 그 토착민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줄 알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루손!』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그대로 이 섬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아프리카」탐험가인 「D·리빙스턴」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콩고」에 있는 「아르위미」(Arwimi)강을 처음 탐험했을 때였다. 역시 이 강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토인은 「리빙스턴」의 질문을 받고 혼자 『이 친구, 뭐라고 지껄이지?』하고 중얼거렸다. 역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리빙스턴」은 「아르위미」를 그대로 그 강의 이름으로 알고 탐험기에도 그렇게 기록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지명은 그런 일화의 소산만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런던·타임스」사간 『세계지도』를 펴보면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바뀌고 있다. 새로운 나라가 생기고,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는가하면 옛날의 그것들은 어느새 옛날의 그 이름이 아니다.』
요즘 세계의 권위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초판본이 그 창간 2백주년 기념본으로 재 출간되었다. 1768년부터 1771년까지 4년에 걸쳐 편찬되었던 백과사전이다. 바로 이 책에 소개된 「아시아」의 지도에서 우리의 동해가 한해(SEA OF COREA)로 표기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이 바다는 일본해(SEA OF JAPAN)가 국제적인 공식명칭으로 되어 있다. 「런던·타임스」사간 「애틀러스」에도 물론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국제명칭은 고사하고 일목의 유명한 역사소설가인 「시마」(사마료태낭)도 68년12월호「문예춘추」지에서 일본해를 「한해」운운한 일이 있었다.
「애틀러스」의 지명은 그 서문에 보면 『「런던」지명위』와 『미국 지명위』의 표기에 따른 것이다. 그밖에 미상한 지명은 『공식적인 상용표기』에 준했다고 밝히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초판본도 같은 영국에서 발간된 것이다. 그러나 2백년의 터울을 두고 시류는 무상해서 「한해」가 「일본해」로 바뀌었다. 「애틀러스」는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 지도는 정치 현실의 사실(defacto)에 충실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치현실」바로 그 점이 「일본해」라는 지명과 함께 우리의 아픈 곳이기도 하다. 일본해도 한해도 아닌 제3의 명칭이라도 있다면 한결 기분이 달라질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