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이상 급등] 전문가 "과대 평가" 정부선 "일시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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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는 서울시가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될 수 없다고 밝혔는데도 올 들어 호가가 최고 2억원 정도 뛰었다.[중앙포토]

"집주인들의 기대심리로 자고 나면 호가가 뜁니다. 2001~2002년 재건축 호황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서초구 잠원동 S중개업소 사장)

"개발이익환수제 등 악재가 많은데도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우리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매수 대기자는 많은데 매물은 거의 없습니다."(강남구 개포동 W중개업소 사장)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바라보는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는 대체로 현 상태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은 정부 정책과 따로 논다.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단지는 투기지역.주택거래신고지역 등으로 지정돼 세금 부담이 크다. 개발이익환수제.재건축 소형평형 의무비율.후분양 등 재건축 규제책도 적용된다. 1 대 1 재건축으로 용적률 증가 폭이 크지 않은 중층 단지들은 평형을 못 늘리거나 임대 아파트를 지으면 사업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매물은 자취를 감추고 매수세가 줄 서면서 호가가 뛰고 있다.

상승세는 강북권 등으로 번지지 않았으나 재건축의 경우 호가 장세가 아니라 실제 거래가 되고 있고, 일부 일반 아파트 호가도 덩달아 춤추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적지 않다.

◆ 강남권만 들떠=서초구는 지난달 28일 취득.등록세가 실거래가로 과세되는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진정될 기미는 전혀 없다. 재건축값 상승세는 인근 일반 아파트로 확산되는 추세다.

서초동 신동아.무지개.현대아이파크 등은 지난주 1000여만원 올랐고, 강남구 개포동 우성.주공고층단지 등도 1000여만원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갤러리아 팰리스 48평형의 경우 최근 한 달 새 8000여만원 올라 8억~9억5000만원이다. 송파구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잠실 일대 재건축 바람 때문에 일반 아파트 집주인도 호가를 올려 내놓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건축 열기와 파장은 강남권에 국한되는 모습이다. 재건축이 활발한 수도권은 비교적 잠잠하다. 광명시 철산동 주공단지의 경우 이달 중 사업계획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움직임이 별로 없다. 철산동 래미안공인 관계자는 "최근 투기지역에서 해제되고, 사업승인 신청 이후 가격이 소폭 올랐으나 2.17 대책이 나오고 다시 주춤하다"며 "급매물만 가끔 거래될 뿐 대체로 보합세"라고 말했다.

◆ 막연한 기대감일까=강남권만 들썩이는 이유는 뭘까. 많은 중개업자는 "강남에 나올 수 있는 규제는 거의 노출돼 더 이상 악재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본다. 개발이익환수제도 2003년 10.29 대책 이후 줄곧 예고된 악재여서 시행되기도 전에 약발이 다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초구 서초동 시티공인 안시찬 사장은 "언젠가는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호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 때문에 매물 기근 현상은 심해지고, 값을 올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사장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지는 전매가 1회만 허용돼 매물이 부족한데 물건이 나오기만 하면 거래돼 호가가 뛴다. 매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증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시중에 떠돌고 있는 수백조원의 부동자금이 여전히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기웃거리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아는 사람끼리 '사모 펀드'를 조성해 향후 집값이 오를 만한 곳을 사두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교 등 인기 지역에 청약 기회가 줄면서 결국 돈이 될 만한 곳은 강남권밖에 없다는 심리도 상승세에 한몫하고 있다. 가락동 삼천공인 홍순화 사장은 "경기 회복으로 아파트 값이 바닥을 쳤다는 생각에 지난해 집 장만을 미뤘던 사람들이 올해 매수세로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초구 잠원동 양지공인 이덕원 사장은 "거주를 목적으로 한 실수요자가 늘어난 것도 규제에 덜 민감한 원인"이라며 "무주택자나 1주택 소유자들이 살던 집을 팔고 대출 받아 구입하는 형태가 많다"고 전했다.

◆ 거품 붕괴 주의보=현지 중개업소에서는 특별한 악재가 없으면 당분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압구정동 공간공인 김희선 실장은 "매물이 없는 상태에서 매수 대기자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4~5월 비수기에 잠시 꺾일 수 있지만 다시 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재건축시장의 거품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개발이익환수제 등은 적용 사례가 없고, 정확한 수익성도 분석하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호가가 뛰고 있다"며 "중층 아파트의 경우 실제 투자 가치보다 과대 평가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사업 단계에 따라 국지적 상승세는 예상할 수 있지만 비정상적으로 움직인 곳은 곧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며 "실수요자들은 추격 매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도 최근 재건축 강세가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추가 대책 등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 서종대 주택국장은 "지금 주택시장은 시계추가 정점에 내려갈 때 진폭이 나타나는 것처럼 가격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그 폭은 차츰 줄어들고 있다"며 "비수기가 되고, 개발이익환수제가 실제로 시행되면 시장이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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