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금융개입 방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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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영복 대출사건은 단순한 사기사건이라고 하는 검찰의 발표 이상의 것을 밝혀내지 못한 국회재무위원회는 결국 사건처리방안으로서 권력의 금융개입을 방지키 위해 금융의 자율성을 확고히 하라는 시정건의안을 낼 것이라 한다.
그러한 건의가 재무위의 합의된 안으로서 제출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이 사건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공화당 및 유정회 소속 의원들이 오히려 금융제도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기이한 감조차 없지 않다.
남 재무는 사건의 진상에 대해 검찰의 발표 이상은 아는바 없다고 하면서도 금융에 대한 권력의 개입 배제에는 자신이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것이 존재도 하지 않았던 권력개입에 대한 자신감이탄 무엇인지 공허한 느낌조차 주는 것이다.
원래 자본 제 경제에서 권력과 금력의 관계는 모호하면서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 선진국형에서는 금력이 권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데 반해서 후진국형에서는 그 반대의 경향이 두드러 진다. 그러므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 양자의 숙명적 관계를 단절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단절의 정도가 정치풍토에 따라서 크게 좌우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 배경을 전제로 할 때 정치풍토가 금융개인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에는 이와 비례해서 강력한 개입배제장치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사리를 그러한 각도에서 평가할 때 금융에 대한 개입풍토가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느냐에 대한 판단 없이 개입배제장치를 강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쓸 데 없는 정력의 낭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사기를 당한 은행의 인적구성을 대담하게 개편함으로써 앞으로 다시는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높은 자질의 경영층 선임을 구상하여 실천하는 일 뿐이라 할 것이다. 사기를 당한 책임이 행장과 일선 실무자에게만 있다는 정도로 매듭짓는다면 금융기관임원들의 무책임을 앞으로도 시정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에 대한 권력의 개입여부를 알 길이 없다. 단지 모든 처리는 앞뒤가 맞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만일 권력이 금융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면 그에 따라서 개입배제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나 그런 것이 없었다면 구태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모든 조사과정에서 권력이 금융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파악되지 못한 이상 그 개입 도를 전제로 해서만 논의될 수 있는 개입배제장치를 확연하게 마련해 보아야 아무런 실효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융제도의 개선은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별도의 높은 차원에서 연구되어야 할 연내의 과제임은 사실이나 이번 사건의 매듭으로서 다룰 성격의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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