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의 마지막 FOMC … 떨고 있는 신흥국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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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통화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왼쪽)의 선택에 달렸다.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버냉키 의장은 28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지막으로 주재한다. 사진은 Fed 회의 석상에 나란히 앉은 버냉키와 재닛 옐런 의장 내정자. [워싱턴 AP=뉴시스]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또다시 신흥국 통화 위기의 향배를 가를 칼자루를 쥐었다. FOMC는 지난해 6월 양적완화 축소 구상 발표만으로도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몇몇 신흥 경제권을 벼랑으로 몰고 갔던 국제자금 이탈 행진은 한 달 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공개석상에서 “상당한 수준의 경기확장적 통화정책을 당분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나서야 멈췄다. 그러나 이는 위기의 해소라기보다 지연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FOMC의 양적완화 축소 단행 선언은 신흥국 통화 위기의 봉인을 풀었다. 그 뒤 몇몇 신흥시장에선 불안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번엔 어떨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FOMC가 28~29일(현지시간) 회의에서 지난해 여름처럼 신흥시장 불안을 달래주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FOMC가 양적완화 규모를 또 한 차례 축소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대세다. 매달 850억 달러씩 시장에 투입해 오던 달러공급 규모를 이달에 750억 달러로 줄인 데 이어 다음 달부터는 최대 650억 달러로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예고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더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상황에 대해 “조율되지 않은 출구전략 실행이 신흥시장의 희생 아래 이뤄지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이는 미국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국 내에선 “신흥시장은 그동안 양적완화 정책을 비판해 오다가 이번엔 양적완화를 멈추려고 하자 문제 삼는다”(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국 경제방송인 CNBC는 양적완화 규모 추가 축소에 대해 “갑작스러울 것도 없고, 예상 못한 일도 아니다”라고 평했다. 지난해 여름 출구전략 착수 카드를 처음 꺼내 보인 이후 신흥시장에 신호와 기회를 충분히 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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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경제상황도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실업률이 6.7%로 떨어졌을 정도로 미국 경제 회복에 탄력이 붙었다. 이에 힘입어 신흥시장 충격을 바라보는 시각도 예전 같지 않다. 신흥시장이 흔들린다고 해도 미국 경제는 끄떡없을 것이란 의견이 팽배해 있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며칠간의 국제 금융시장 동요는 미국 경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번 국면이 미국 경제에 득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흥시장에 문제가 생길수록 미국 시장이 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지난 24일 미국 증시는 3대 지수가 모두 2% 이상 빠질 정도로 폭락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상적인 조정(correction)이라고 부를 정도다. 미국 증시에는 주가가 더 빠지면 주식을 사려는 대기자금이 줄을 서 있다.

 아직까지는 FOMC가 양적완화 축소를 미뤄야 할 논리 부족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버냉키는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마무리 짓겠다고 공언해놓은 상태다. 약간의 변수는 있다. 아무리 미국 시장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도 신흥시장 불안은 돌고 돌아 미국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부메랑 효과’다. FOMC 최종 결정을 앞둔 27~28일 세계 금융시장이 그래서 주목된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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