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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모미이=하시모토=아베'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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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총국장

기자들이 하는 우스개로 “출구조사 정확도는 NHK가 세계 1위”란 말이 있다. 족집게처럼 맞히기 때문이 아니다. 타 방송사는 “자민당 200석, 민주당 182석”이라는 식일 때 NHK 출구조사는 이렇다. “자민당 180~215석, 민주당 170~210석.” 틀릴 일이 없다.

 시청자들로서는 답답할 일이다. 하지만 NHK는 이를 고집한다. “사실관계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공정성이 있었기에 NHK는 국내외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아 왔다.

 그러나 27일 모미이 가쓰토 신임 NHK 회장의 망언은 그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모미이 회장은 크게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왜곡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만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것처럼 이야기하니까 (문제가) 꼬이는 것이다. ‘돈을 내놓아라’ ‘보상하라’고 말하는데, 일·한 조약에서 다 해결된 것을 왜 뒤집느냐”고 말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일본의 역대 정권 스스로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이 요구하고 있는 건 일본의 국가책임 인정이지 돈이 아니다. 돈을 원했으면 1995년의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보상받고 끝냈을 문제다.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을 돈 몇 푼 챙기려고 공갈치는 집단으로 모독했다.

 둘째, NHK를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와 같은 급으로 전락시켰다. 모미이는 “전쟁 지역엔 어느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 독일·프랑스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나. 왜 네덜란드에는 지금도 ‘장식 창문(홍등가)’이 있는가”라고 했다. 마치 지난해 위안부 망언 시리즈를 쏟아낸 하시모토의 발언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하다.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고 강제 동원됐던 위안부를 매춘부와 동일시한 발언이다. NHK 회장의 격을 거론하기 전에 인격체로서의 소양을 의심케 한다.

 지난주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일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과 영국 관계에 빗댄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아베 정권은 통역상의 오류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유럽 사람들이 민감해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 내 비유한 것에 대한 자체 반성은 없다. NHK 모미이 회장의 망언에 대해서도 “개인 의견”(스가 관방장관)이란다.

 예전에 내가 알던 ‘큰 나라’ 일본은 어디 갔나. 태평양의 외딴 조그만 섬 갈라파고스로 변해가고 있는 일본이 안타깝다.

김현기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