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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둬두면 국가적 손해다" 희대 은행 「킬러」박영복. 옥중서도 호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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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희대의 은행 「킬러」박영복씨(38)의 「베일」에 싸였던 사기행각이 하나둘씩 벗겨지고 있다. 74억원을 빼낸 수법과 호유행각·전과등이 검찰의 수사진행과 아울러 차차 드러나고있으나 아직도 돈의 행방등 아리송한 의혹등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있다.
박씨의 은행상대의 사기행각은 68년 고정훈씨의 2억4천만원의 부실담보융자사건의 배후인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나 본격화 한 것은 71년3월 금녹통상을 설립하면서부터. 이때 박씨는 1천5백만원을 출자했고 해양대학 8년 선배인 이윤영씨(48)와 김용환씨(53·구속중) 그리고 현 K모국회의원 비서를 8년 역임하다 미국에 이민간 정지영씨가 각각5백만원을 낸 것으로 되어있다. 박씨는 이씨를 이보다 5년 앞서 알았으나 70년초 퇴계로4가에서 자가용을 타고 가는 박씨를 이씨가 발견, 다시 만나게되어 금녹통상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것.
71년3월부터 지난1월27일 은행감독원의 감사로 부정전모가 발각되어 구속될때매까지 상대한 은행은 7개 은행, 관련사업체는 18개 업체였고 마지막으로 골탕먹인 은행은 서울은행에 남도산업이 「카운터파트」였다.
가장 크게 물린 은행은 서울은행의 12억2천2백만원, 중소기업은행이 7억3천5백만원, 신탁은행 2억원, 외환은행 2억6천9백만원 등이다.
박씨의 고향은 경북운위나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다녔다. 박씨가 대륜고등학교를 다닐때도 「서클」활동이 활발했고 학업성적은 중간정도. 졸업성적은 평균 61점으로 2백46명 가운데 1백40등이었다. 인물개평난에는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성과 통솔력이 강하다』로 되어있다.
해양대학시절에는 교수진의 생일을 「메모」. 선물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한다. 선원 생활을 호탕하게 보내다 그만두고 박씨가 처음 손댄 것은 무허가벌목. 이때부터 사기성을 발휘, 큰소리치며 산림관계공무원을 구슬러 한때 재미를 단단히 보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꼬리가 잡혀 29일간의 구류를 산적도 있다한다.
박씨의 은행사기발판은 68년8월. 대구시남구대명동182의1 임야4만2천평을 1천3백만원에 외상으로 사들여 한국감정원에는 다른땅을 이땅이라 속여 1억4천2백65만원으로 감정받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감정서 사본을 당시 아진흥업대표이사 고정훈씨(53), 동상무 정세진씨 (41)에게 보여 고씨등은 2억원과 주식을 주기로 하고 이 땅을 사들인후 이를 담보로 68년8월22일∼9월9일사이에 1억원을 대출받았다는 것이다. 고씨와 정씨는 이 사건으로 1심에서 각각 징역6년, 징역2년6월을 선고받았으나 박씨는 기소도 안됐다.
그러나 2심인 서울형사지법항소부는 작년 12월26일『고씨등은 박씨에게 속았을 뿐이고 은행을 속이지 않았다』고 판시, 고씨에겐 징역 1년6월·집행유예 2년, 정씨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의 ,전과조회에 따르면 70년에 감금혐의, 71년·72년에 관세법위반, 73년에 사기미수로 수사받은바있다.
72년「밍크」위장수출로 구속됐을때도 「무죄」로 나왔다.
박씨는 서울종로구청운동 배정자씨집 등 수만평을 사들여 국내 최고의 관광요정을 거의 완성할 즈음 구속됐다는데 박씨가 사기한 돈은 해외에 많이 빼돌렸다는 소문이다. 앞서 미국에 이민간 정지영씨도 많은 돈을 분배받아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씨가 부동산 6채중 전모기관과장 K씨에게 빌려준 혜화동에 있는 집은 그가 구속된 뒤 지난 2월28일 경매처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은행부정융자에 사용한 방법은 ▲허위담보를 통한 융자와 ▲신용장변조.
허위담보를 믿게하고 거짓신용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재주와 아리송한 배후의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의 재주때문에 은행가에서는「돈 많은 청년실업가」·「밤의 신사」·「은행의 구세주」로 통했다.
중소기업은행 부실담보융자때 김용환씨를 시켜 대구·부산등지의 남의 땅을 변조, 서류를 서울로 나를때는 비행기편으로 공수했고 감정원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 부근의 복덕방을 매수, 감정원이 현장에 출장, 땅값을 물으면 싯가의 10여배까지 올려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사기재벌」박씨의 술수에 놀아난 은행원들에 따르면 박씨의 밤의 「호유행각」도 두드러지고 있다.
박씨가 주로 드나든 요정은 을지로2가의 만수대와 불광동 등 비밀요정. 박씨가 손아귀에 꼭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최고의 고객」과 술자리를 같이 할때면 「팀」을 20만원까지 주어 이른바「풀·코스」를 밟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보통 고객에게도 시중한 접대부에게는 5만∼10만원의「팁」을 손에 집히는대로 건네 주었다는 것이 박씨를 상대했던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연말 박씨의 망년회에는 자기업체 간부와 은행관계자 20여명이 참석, 호화판 망년회가 벌어졌는데 끝났을때는 3백만원의 계산서가 내밀어졌다는 것이다.
박씨가 검찰에 잡히기 전 4일간 머물렀던 내연의 처로 알려진 연규일씨(37·만수대 「마담」·성북구성북동179의52)와는 작년3월 만수대에서 알았다는 것이다.
박씨는 배후에 밀어주는 유력인사들을 술자리에 곧잘 불러 들여 「형님」호칭을 썼고 은행간부를 찾아간 자리에서도 요직인사에게 전화를 하는 등 허세를 부렸다는 것이다.
전 종로지점장 정태기씨(54)는 『박씨가 의심이나 대출서류를 늦추면 당시 심사부장 손모씨등 고위은행간부로부터 우물대지 말라는 독촉전화가 빗발치듯해 뒷바라지하다 이꼴이 됐다』고 진술했다. 손모부장과 윤모 전외국부장은 『박씨가 모기관에 자주 출입한다고 자기소개를 하고 행장 등 웃사람의 태도도 그러하여 박씨의 사업이 후원사업인줄 알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본부인은 박씨와 이혼, 미국으로 이민가 버렸고 두번째는 술집여자를 맞아들였으나 여자의 바람때문에 이혼, 현재의 부인인 전직 모법관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치부를 하기 시작하자 어렸을때 자기를 구박하던 형들을 위해 대구에 연탄공장을 사주는 등 형제간의 우애를 베풀기도 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감방동료들에게 자기의 나이를 47세로 올려말하고 출정 후 감방에 돌아올때는 근처 감방에 들리라는듯이 『형님들 나는 곧 나가게됩니다』고 큰소리치고있다는 것.
감방에서의 그의 별명은「고려자기」. 항상 『고려자기같은 나를 이곳에 가두어두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고 떠들어댄다는 것.
또 지금의 세째부인 조씨와 결혼할때는 총각이라 속였고 결혼 1년뒤 사실을 털어놓자 부인이 기절해버렸다는 것.
지난3월22일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5일간을 보리차외에는 거의 먹지 않고 단식을 했다한다.
감방안에서는 상오6시면 일어나 불경을 소리내어 읽다가 감방동료들에게 등을 맞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의 건강은 무척 나쁜 편. 지병인 당뇻병이 악화돼 +6∼+8정도로 이때문에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발을 내놓고 잔다는 것.
그는 최근 일반 감방에서 병동(병동)으로 옮겼다. 구속직후 가족·형제·사업동료들이 줄을 이어 찾았으나 사건이 큰 사회문제로 되자 면회객은 발을 끊어 요즘은 전혀 면회온이가 없다고 전했다. <이원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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