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강습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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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플라톤에 의하면 이상적인 도시란 인구가 5천40호 정도로 한정되어 있어야한다. 1가족 5인으로 잡으면 약2만5천명이 알맞는 인구가 된다.
플라톤이 어떻게 이런 숫자를 산출해 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2에서 7에 이르는 모든 숫자를 곱하면 꼭 5천40이 된다. 플라톤의 얘기가 맞는다면 우리 나라에는 이상적인 규모의 서울이 있어 본적이 없다. 고구려 말의 경중의 호수는 20만이 넘었었다. 삼국 중에서 제일 작았던 백제의 서울도 15만호는 넘었었다.
이상도시의 호수를 한정한 플라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살던 아테네의 인구는 1백만명이 넘었다. 이리하여 민주주의는 중우의 정치로 타락되고 사회악은 증가일로에 있었다.
인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인간의 가치는 하락되게 마련이다. 이게 플라톤이 얻은 결론이었다. 근대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을 사랑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이 도시는 앞으로 더욱 커져가겠지만 그래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
키에르케고르의 논리에 의한다면 인구 2만5천명의 도시에서는 인간의 가치는 2만5천분1이 된다. 5백만명의 도시에서는 인간의 가치는 5백만분의1로 떨어진다. 플라톤이나 키에르케고르의 논거가 옳으냐, 틀리느냐는 것은 학자들이 가려낼 문제다. 그러나 일반시민에게는 그런 논리가 그럴싸하게 실감된다.
인구가 6백50만명이 넘는 서울에서 이젠 이웃 4촌이란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만큼 서로가 매정스러워지고, 정리의 유대를 찾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옆집에서 굿을 해도 모를 만큼 바삐 돌아가는 게 서울이기도 하다. 서울처럼 비밀을 숨겨두기 쉬운 곳도 없다.
영어에 란 표현이 30년대에 유행되었다. 직역하면 『시카고에 간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종적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시카고의 인구가 늘어나고 무질서해지자 한두 시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길이 없게된 데서 나온 속어였다.
오늘의 서울이 꼭 그렇다. 관의 단속이 엄하다하면서도 여러가지 무허가강습소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강습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기도 어렵다.
공인되어있지도 않고 시설도 빈약한 강습소에 사람들이 곧잘 몰리는 것도 도시의 잉여인구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교육기관이 낸 『취직책임보증』이란 허위광고문에 끌려 희생되는 딱한 사람들을 보고 딱하다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그리 흔하지 않다.
도시 인구의 가치가 그만큼 하락된 것이다. 사설강습소의 속임수가 횡행할 수 있는 틈새는 이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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