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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거대한 연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자연적으로 쓰러진 고목들이 강으로 떠내려가기도 한다. 하류로 향하여 내려갈수록 강폭이 자꾸 넓어지는데 강가의「정글」은 더욱 우거져 있다. 원시적일 만큼 무섭게 퍼붓는 호우로 모기 따위는 씻겨 내려갔을 것 같은데도 밤이면 수 없이 달라붙기 때문에 좀체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아마존」유역「정글」의 모기는 무서운 흡혈귀다. 낮선 황인종의 피가 맛있다고 자꾸 달려드는 것일까.

<「정글」의 도원경>
새벽「커누」를 타고 내려갈 때였다. 안개가 자욱이 끼었는데 어두운 밤을 지샌「정글」에 안개가 뽀얗게 물린 광경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비스럽다. 그렇게도 무서운「이미지」를 자아내는「정글」이 선경처럼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무슨 꿈나라나「유토피아」에 온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에는 맹수며 큰 구렁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별로 볼 수 없었다. 장마 때문에 강물이 많이 불어서 강가에서는 악어며 물 구렁이를 보기가 어렵다. 더구나「아마존」강엔 20m나 되는 크나큰 물 구렁이인「스쿠리」가 있어서 큰 소라도 삼킨다고는 하기만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 동양의 용에 비길만한 바다 구렁이는 서양의 상상동물로서 저 괴기주의화가「뵈클린」의 그림 속에 그려져 있듯이 이「아마존」강에서는 물 구렁이를 꼭 보았으면 하고 바라건만 좀체로 보이지 않으니 아쉽다.

<물 구렁이엔 현상금>
하긴 몇 십년 전부터 미국의「포드」재단이 학술을 연구하기 위하여 10m이상의 구렁이라면 뼈다귀나 가축이라도 좋으니 족히 2천「달러」로 사들이겠다고「아마존」유역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공모했는데도 아직까지 잡아오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보니 모르긴 해도 책에서 보는 그런 큰 구렁이는 좀 체로 보기 어려운가 보다.
악어나 구렁이와 격투를 벌일망정 꼭 만났으면 하고 그들이 좋아하리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찾았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녕 희한한 것을 발견했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물가에 고이 괴어있는 이 지상에서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는 연꽃이었다. 잎사귀지름이 1「미터」가 더 될 듯한 크나큰 연인데 불그레한 꽃은 반쯤 벌리고 슬그머니 피어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환상과 연상이 불현듯 일어났다. 이 연꽃에서 심청이가 되살아나는 갸륵한 모습을 보았고 석가의 모습을 보았다. 의젓이 피어 있는 이 커다란 연꽃은 미소와 법열과 열반을 자아내는 것이 아닌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아마존」에 피는 연꽃이기에 그 모습이 더욱 거룩하게 느껴졌다. 이 연꽃은 고스란히「아마존의 종교」를 상징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가 싶었다.

<「모세」라도 태웠으면>
이런 연꽃은「인도네시아」에서도 보았지만 풍토를 달리하는 이곳이기에 더욱 색달라 보인다. 아기가 이 연꽃 잎사귀에 타도 가라앉지 않을 만큼 부력이 커 보였으며 개구리들에는 넓은「올림픽」운동장이었다. 그 옛날「나일」강에서 아기「모세」를 떠내려 보낼 때 이 연잎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연꽃은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연꽃은 비단 불교의 상징만이 아니며 이 우주의 진선미의 표상이 필수도 있으리라.
「아마존」(Amazon)이란 말은「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소「아시아」북방주변의 여 전사들이란 뜻을 지닌다고 한다. 이 여자들은 다른 종족인 남자와 정교를 맺고 아기를 낳으면 사내는 거세하거나 죽이고, 여자는 고이 길러서 전사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여 전사들은「펜테실레이어」여왕의 통솔 밑에서 활·도끼·창 따위로 매우 씩씩하게 잘 싸웠기 때문에「아마존」이란 이름은 곧 여자의 용기를 뜻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이 세계 최대의 강에 붙어진 것이라 한다.

<여왕이름을 붙여 볼까>
한편「아마존」강이 이런 이름을 지녔기에 이 연꽃에「아마존」여족의 여왕의 이름인「펜테실레이어」를 붙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연꽃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런 호투적인 인간의 이름을 따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일·그레코」나「조르지·루오」의 종교화를 보는 듯이 성스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정글」을 배경으로 한 이 연꽃의 위대성은 성문화할 수는 없으나 오만가지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이「아마존」은 문명발상지로서의 강인「나일」·「인더스」「티그리스-유프라테스」·황하들처럼 드높은 문화적인 창조는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그보다 높은 차원의 불문율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졌다. 이「아마존」은 과거의 강이 아니라 현재, 아니 미래의 강이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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