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되는「나세르」격하…「사다트」성장과시 의도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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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세르」는 6일만에「수에즈」운하를「이스라엘」군에 빼앗겼지만「사다트」는 6년만에 그걸 탈환했다.』 요즘「이집트」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곧잘 주고받는 다고 외신은 전했다.
「6일」과「6년」이라는 숫자의 대비는 극적 요소를 약간 저해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농담은 요즘 서서히 일고 있는「이집트」내「나세르」격하운동과「사다트」대통령의 상대적 부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세르」격하운동이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징조는 지금까지「카이로」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그의 사진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과「이집트」내 유력지들이「나세르」치하의 비밀경찰제도, 사유재산몰수, 심지어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정책까지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점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세르」주의의 대변자인「헤이칼」이「알·아람」지 주필직에서 해임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의 전주곡이었음이 명백해졌다.
「나세르」격하 움직임은「이집트」의 지도자로서 뿐 아니라「아랍」민족주의의 지도자로서「나세르」가 갖고 있던 이중의 역할을 이제「사다트」가 이어받으려는 준비작업인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10월 전쟁이 있기까지「사다트」는 다만 재주 있는 정치가 정도로밖에 평가되지 못했다. 「리비아」의「가다피」대통령이「나세르」주의의 후계자임을 자칭하고 있을 때「사다트」는『올해는 기필코 화·전 어느 편으로든 중동문제를 해결하고 말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로 해를 넘기곤 했었다. 10월 전쟁의 결과는 이러한「사다트」의 미지근한 인상을 일신하는데 결정적인 전기를 가져다주었다.
지난번「트리몰리」에서 있었던「아랍」산유국회의에서「리비아」와「이라크」등 강경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미 단유의 해제를 관철시킨 것은 10월 전 이후「아랍」국가들 사이에서「사다트」가 갖게 된 발언권외 강도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사다트」가 「아랍」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역할의 한계도 동시에 노출시켰다.
이 회의에서 노출된「이집트」외교의 친미전향과「나세르」가 표방한「아랍」민족주의 사이에는 분명 넘지 못할 강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나세르」격하운동은「사다트」가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나세리즘」이라는「아랍」인의 우상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믿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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