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욕, 왜 늘어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국민 여동생 대신 국민 ?욕’동생이, 드라마에선 아름다운 대사 대신 욕 대사가 더 인기입니다. 국민 욕동생이 구성지게 내뱉는 욕설을 모은 동영상 클립이 인기를 모으고 드라마 주인공들이 팔도 사투리로 욕 배틀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금기시하던 비속어가 드라마·예능·광고에서 쏟아져나오고, 그런 욕 몇 마디로 시청자 이목을 사로잡아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하죠. 우리 사회가 욕에 대해 갑자기 관대해진 이유가 뭘까요. 신문과 교과서에서는 언어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분석하는지 살펴봅시다.

생각해볼 문제

TV를 켭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가 상대방을 향해 서슴없이 “못생겼다” “멍청하다”고 독설을 내뱉습니다. 인터넷 광고는 더 심합니다. “이년아” 정도는 욕도 아닙니다. 참치캔 뚜껑이 날카로워 손가락까지 썰어버렸다고 씩씩거립니다. 거침없는 육두문자와 블랙유머가 이어집니다. 케이블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그맣고 예쁜 여대생이 친구를 향해 “창자를 걷어내서 빨래줄에 널어버리겠다”며 눈을 부릅뜹니다. “목을 따버린다” 쯤은 일상용어입니다. 또 다른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주고받는 욕설을 자막으로 처리합니다. 뉴스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국회에선 늘 막말이 난무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알 만한 연예인이 서로를 디스(상대를 헐뜯고 조롱함)하는 노래를 만들어 올립니다. 사생활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불만을 가감없이 표출합니다. 일명 힙합 디스전(戰). 이 전쟁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표현은 점점 더 거칠어집니다.

 대중매체에서는 그동안 욕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해 욕설을 금기시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못된 말’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욕설이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눈알을 빼서 젓갈을 담그겠다’ 같은 잔인하고 충격적인 표현에 열광합니다.

 신문 기사에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분노와 짜증이 팽배해 있다’고 원인을 분석합니다. 정치인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교수 등 사회 지도층 인사가 내뱉는 막말과 거짓말, 안하무인한 태도, 성추문 등 비도덕한 행동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정제된 표준어로는 억울함·짜증·분노가 뒤섞인 격한 감정을 도저히 표출할 길 없어 답답한데, 방송에서 해맑은 얼굴의 연예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어주니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겁니다.

대중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소년들을 위해 교과서에서는 욕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까요.

교과서 속 대안과 해결책

중학교 국어교과서는 언어를 세상을 비추는 거울, 세상을 담는 그릇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거울이 세상 온갖 것을 비추고 그릇이 갖가지 것들을 담듯, 말에도 세상살이의 온갖 모습이 비치고 세상살이의 갖가지 속살이 담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언어를 살피기 전에 우선 사회의 변화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로 속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실시간이라는 말이 단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실이 됐죠. 아침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 전국으로 퍼지는 데 채 한나절도 걸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회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나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이런 현상을 ‘문화 지체’라고 설명합니다. 사회 변화는 자동차·인터넷·스마트폰과 같은 물질적인 것과 의식·제도 등의 비물질적인 것으로 나뉘는데, 물질적 변화를 비물질적 변화가 쫓아가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죠. 변화 속도가 빨라진 만큼 문화지체 현상도 그만큼 심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스트레스는 이런 문화지체 현상으로 인한 것이라 설명할 수 있지요.

 사실 이런 현상이 오늘날에만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사회가 급변할 때마다 언어에는 분노가 담기곤 했습니다. 근대화가 태동했던 조선 후기 사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근대의 기운이 움트고, 서양 열강이 침략적 접근을 해오던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세기 흥선대원군의 세도정치 아래 권세가와 결탁한 대상인들의 독점적 횡포와 대지주의 토지 집적으로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농민들이 도적이 돼 재물을 약탈하기까지 하니 사회가 매우 흉흉했습니다.

 이때 꽃핀 게 서민문학입니다. 양반 전유물이라 여겼던 시조를 서민 입맛에 맞게 사설시조로 각색해 서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현실을 비판합니다. 사군자를 즐기던 양반의 그림은 형형색색의 민화로, 고고한 춤은 양반을 비꼬고 풍자하는 탈춤으로 변모합니다. 반상과 적서차별에 정면으로 도전한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같은 파격적 내용의 한글소설도 크게 인기를 끕니다.

 특히 사설시조는 탐관오리를 두꺼비에 비유해 조소와 야유를 하거나, 성적 문란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이중적인 선비 모습을 비꼬고 궁핍한 현실에 대해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경우가 많지요. 오늘날 소위 막장이라 불리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예능 프로그램도 당시 서민문학과 비슷한 양상이 아닌가 생각해볼 만합니다.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 눈에 서로를 향해 공격과 비아냥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나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이때 사회변화를 좀더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화합하고 힘을 합했다면 이후 일제강점기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답은 간단합니다. 지금 나의 분노를 사회의 발전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

QR코드를 찍으면 욕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최서희(국어), 청운중 천은정(사회) 교사
정리=박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