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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우는 개인파산 면책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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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법원의 개인파산 결정을 통해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이 각종 차별로 인해 새 삶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적으로는 깨끗한 신분이지만 신용정보에 남아 있는 파산 기록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취업 장벽에 계속되는 빚 추심=실직과 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9000여만원의 빚을 져 2년 전 신용불량자가 됐던 요리사 허모(37)씨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해 지난해 9월 빚을 모두 탕감받고, 복권되는 면책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새출발을 기대했던 허씨에게 지난 6개월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신용불량등록 해제부터 쉽지 않았다. 빚을 진 8개 금융기관에 일일이 관련 서류를 보내야 했다. 신용정보를 관리하는 전국은행연합회와 법원 사이에 정보 교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기관마다 요구하는 서류도 달랐고, 처리 기간도 제각각이었다.

금융 거래도 쉽지 않다. "이제는 아무 문제없다"는 설명을 듣고 한 은행에 계좌를 개설했지만 갑자기 돈이 인출되거나 지급 정지가 되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은행 측은 매번 항의를 해야 "실수였다"면서 돈을 돌려줬다.

카드빚 7000여만원에 대해 지난해 12월 면책 결정을 받은 이모(33.여)씨 역시 보증보험 회사에서 보험 발급을 해 주지 않아 회사 입사가 취소됐다. 신용정보에 남아 있는 파산 기록 때문이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신용정보관리규약'에 따라 면책자에 대해 특수기록을 7년간 보관한다. 이씨는 "취업하려다 주변에 파산 사실만 알려졌다"면서 "자영업을 할 밑천도 없는 면책자들이 취업마저 안되면 살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미 탕감받은 빚을 추심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사업 실패로 1억여원의 빚을 졌던 정모(36)씨는 면책을 받았으나 지난달 한 추심회사에서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사정을 알아보니 채무가 있던 은행 중 한 곳이 이미 탕감받은 채권을 추심회사에 뒤늦게 팔아넘긴 것이었다.

◆"전과자 낙인 개선돼야"=허씨는 지난해 11월 인터넷 카페에 '면책자 클럽'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허씨는 "금융기관들이 면책자들을 '전과자'처럼 낙인찍고, 일반 회사들에까지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면책과 신용불량 기록의 보관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그러나 면책도 신용정보이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이를 참고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면책이란=개인파산을 한 사람들이 빚을 취소받고 각종 신분상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법원의 결정. 개인파산 선고 뒤 신청할 수 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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