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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재 모방하는 보통사람 … 한국 노래방 궁금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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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호 12면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유럽 국가에서 장관직에 오른 플뢰르 펠르랭(41). 검은색 단발에 붉은 립스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치마 정장을 즐기는 그는 때론 과감한 미니스커트도 입는다. [중앙포토]

1973년 8월 29일, 서울에서 김종숙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출생 3일 만에 길거리에 버려진 이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6개월 후 프랑스로 입양됐다. 원자물리학자인 프랑스 아버지는 한국에서 온 딸에게 ‘꽃(Fleur)’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한국 알린 공로로 ‘징검다리상’ 받은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김종숙 대신 플뢰르 펠르랭으로 살아온 그는 올해 41세로 프랑스 정부의 고위 공직자로 성장했다. 프랑스 엘리트들과의 경쟁을 뚫고 초고속 승진했고, 정계에 입문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오른팔이 됐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5월 취임과 동시에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담당 장관으로 그를 지명했다. 유럽을 통틀어 최초의 한국계 장관이다.

한국 출신이 해외에서 성공하면 ‘한국인이 외국에서 성공했다’며 법석을 떠는 한국에 대해 그는 냉정하다. 지난해 3월 자신을 버린 나라의 땅을 다시 밟은 그는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향해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친부모를 찾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 내 가족은 프랑스에 있다. 난 프랑스 국적의, 프랑스 사람”이라고 했다.

펠르랭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도 담담하게 직시한다.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돼 영광이다. (한국이) 입양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15일 서울에서 한국을 해외에 알린 이들에게 수여하는 ‘징검다리상’을 받았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매년 1월 국내외 여론을 수렴해 수여하는 상이다.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제10회 CICI 코리아 행사에 그는 북미 출장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직접 참석하는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최정화(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CICI 이사장이 지난달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그의 집무실에서 상을 직접 수여했다.

시상식 직후엔 최 이사장이 본지가 준비한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CICI-중앙SUNDAY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펠르랭 장관은 사안에 따라 불어·영어를 섞어 답했다. 그는 영어 생활권에서 거주한 적이 없지만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최 이사장은 “펠르랭 장관의 집무실에 멋진 그림이 걸려 있길래 물어봤더니 자신이 직접 그렸다고 해서 놀랐다”며 “노래는 프랑스 방송에 나와 무대에 설 정도로 수준급인데다 요리 솜씨도 뛰어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펠르랭은 최 이사장에게 “난 단지 천재를 모방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취미는 유명 요리평론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을 다녀온 후 그 맛을 기억해 자신의 주방에서 재현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본지와 CICI의 공동 인터뷰 일문일답.

-본인의 인생에서 큰 용기를 냈어야 했던 때는.
“(지난해) 방한 당시, 내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다. 장관으로서, 또 공인으로서 나에 대한 관심이 한·불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내겐 흥미롭게 다가온다. 가끔은 장관으로서의 내 임무와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뒤섞이는 바람에 난처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고, 그 결과로 한·불 관계가 좋아진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질문에 맞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CICI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러 국가 중 문화로 소통을 가장 잘하는 곳으로 프랑스가 선정됐는데.
“조국 프랑스에 관한 일이니 프랑스어로 답하겠다. 한국인들이 프랑스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준다니 기쁜 일이다. 한국 역시 문화강국이다. 한국 대중음악뿐 아니라 영화도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 감독은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문화는 훌륭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펠르랭 장관은 16세에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다. 프랑스 상경계열 명문으로 손꼽히는 고등경영대학원(ESSEC)과 고위 공무원 양성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남편 로랑 올레옹 역시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한 고위 공무원이다. 펠르랭 장관의 ENA 졸업 성적은 상위 15% 안에 들었고, 그는 희망했던 기관인 감사원에 들어가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 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10년엔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인이었던 세골렌 루아얄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언론 담당으로 일한 인연도 있다. 한 미국 패션매체는 ‘프랑스 여성 장관들, 패션의 역사를 다시 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그가 빨간 립스틱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은 채 출근하는 사진을 싣기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그에게 맡긴 분야는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다. 올랑드 대통령에 대해 펠르랭 장관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이라고 존경심을 나타냈다.(인터뷰는 올랑드 대통령의 염문설이 터져 나오기 이전에 이뤄졌다.)

-장관직을 맡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에 대해선 한국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는 소통할 이슈들이 무궁무진하다. 한국은 디지털경제 시대의 선두주자 아닌가. 한국의 정보기술(IT)은 한국 경제부흥의 주역으로 세계에서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프랑스에도 전도유망한 벤처 기업들이 많기에 양국이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디지털 이외에 한식과 같은 문화로 한국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한식 역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과 한국과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문화, 그중에서도 요리와 식문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가오는 2016년이 한·불 수교 130주년인 만큼 양국 문화교류는 더욱 급증할 것이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CICI의 징검다리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은.
“이 질문엔 영어로 답하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며 자랑스럽다. (출장 및 국정 일정상)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곧 한국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난 방한 당시 너무 바빠서 가지 못했던 노래방도 꼭 가보고 싶다.(웃음)”

CICI는 2005년부터 매년 한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사물을 지정해 ‘디딤돌상’ ‘징검다리상’ ‘꽃돌상’ 등을 수여해 왔다.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 및 사물에수여되는 ‘디딤돌상’의 지난 수상자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휘자 정명훈 등이 있다. 올해 디딤돌상은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지정돼 삼성전자 이돈주 사장이 상을 받았다. 특별상 격인 ‘꽃돌상’은 유럽을 무대로 활약해온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씨가 받았다. 나씨는 이날 행사에서 ‘아리랑’뿐 아니라 프랑스의 국민 샹송 격인 ‘나를 떠나지 말아요(Ne Me Quitte Pas)’를 부르며 좌중을 휘어잡았다.

이와 함께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등 48개국 주한 대사들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한승수 전 국무총리 등 전·현직 공직자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구자훈 LIG문화재단 이사장 등 재계 인사 등이 두루 참석했다.



※ 펠르랭 장관 인터뷰 동영상 하이라이트 편집본은 중앙SUNDAY 모바일 에디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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