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러브 인 맨하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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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맨하탄'의 원제는 '맨해튼의 하녀'(Maid in Manhattan)다. 뉴욕 특급 호텔의 객실 정리담당이 주인공이다. "맨해튼에서 (뭔가) 이뤘다(Made in Manhattan)"는 애기로도 들린다. 뭘까. '사랑'일까.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주인공들은 게임을 시작한다. 진실게임이다.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은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영화에 따르면, 그 기준은 진심이다. 진심이 담겼다면, 응분의 책임이 따르지만 거짓말 자체는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정도 거짓말은 삶의 활력소 아니냐고, 애교로 봐 달라고 윙크하는 듯하다.

주인공 마리사 벤추라(제니퍼 로페즈)는 10살된 아들을 둔 이혼녀. 호텔에서 야무지게 일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매니저를 해도 되겠다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녀의 꿈도 그렇다. 어느날 의상실에 되돌려주라는 손님의 최고급 옷을 받아든 그녀에게 동료가 말한다. "우리가 언제 5천달러짜리 옷을 입어보겠어?"

그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우연히 크리스 마셜(랠프 파인스)이 본다. 귀공자로 상원의원 후보다. 제멋대로 처신해 비서진의 애를 태우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녀의 진짜 신분은 아직 모른다. 남자의 오해와 여자의 조바심이 엇갈리며 1라운드가 지나간다.

1라운드에는 중요한 복선이 깔려 있다. 마리사의 아들 타이가 학예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닉슨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한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인물이다. 사태의 발단은 거짓말이었다. 불행한 결말을 암시하는 걸까? 그럼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텐데.

이 와중에 동화책 '신데렐라'의 한 장면이 볼거리로 연출된다. 무도회에 초대받은 그녀를 위해 호텔 직원들이 합심해 마술을 부린다. "너는 우리 모두의 꿈, 이게 진짜 네 모습"이라며 격려해주는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온다.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마리사는 해고된다. 하지만 크리스는 혼란스럽다.

그녀가 너무도 순수하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당신같은 사람 옆에 한번이라도 서보고 싶었어요."

'조이럭 클럽'의 웨인 왕 감독은 이렇게 서로 다른 길로 가려는 두 남녀의 손을 슬며시 잡아당긴다. 마리사의 똘똘한 아들 타이는 큐피드의 임무를 멋지게 소화해낸다.

제니퍼 로페즈의 멋진 몸매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녀가 우연히 몸에 걸치는 값비싼 코트는 어색하기 짝이 없고, 무도회에 입고 나오는 드레스도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다.

정작 그녀의 아름다움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해고된 뒤 "가정집 파출부는 비전이 없다"고 엄마에게 소리치는 그녀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핸디캡을 극복하려는 치열한 직업인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맨해튼에서 이룬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꾸었고 그것을 이룰 것이다. '러브 인 맨하탄'이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은 건강함일 게다.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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