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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랑은 사람의 행복을 만드는 절대의 열쇠다. 특히 남녀간의 애정은 그 본질적인 정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현실적인 요청을 안고 있다.
즉 육체적 요구와 결혼, 그리고 가정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애정은 때때로 인간에게 행복 대신에 무서운 비극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한 비극은 둘이서의 사랑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함을 비관하고 포기하여 자살하는 정사의 경우가 그 하나이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사랑한 끝에 결과되는 강간 또는 살인의 경우가 그 둘째이고, 배우자 있는 남녀가 다른 남녀와 정을 통하는 간통이 그 또 하나의 경우이다.
그러나 앞에와 같은 경우가 진정 순수한 사랑으로 인한 범죄와 비극이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를 당연히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사랑은 어디까지나 적극적인 생의 긍정이나 자살은 소극적인 생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논리는 아예 있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만한 사랑의 의지만 있다면 그에 대한 어떠한 장애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므로 정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정사는 건전한 사랑 아닌 퇴폐적 감상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소위 짝사랑에 인한 범죄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무릇 사랑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이 있을 수 없고 공생적이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일체적 결합이 그 절대요소라고 할 것이나,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자기희생이 또한 그 본질적 내용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에로스」적 사랑의 현실에 있어서는 상호 가치 추구라는 것이 더욱 중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며, 따라서 청춘남녀의 현실적 사랑은 적어도 결혼과 가정을 상정하는 한 주관적으로나마 등가관계가 유지되어야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때때로 일어나는 소위 짝사랑에 기인되었다는 강간 또는 상인은 사랑의 본질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순연한 악성과 성욕만에 인한 범죄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나 간통의 경우는 여러 측면에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간통하는 당사자만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주위야 어떻든 이를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할 이유도 없다.
어느 문인의 말대로, 간통이 인문적인 면에서 기존의 형식적인 결혼과 가정이라는 기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참다운 삶을 찾아간다는 진정하고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경우라면 이는 자기 부정적인 범죄와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자기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일시적 허영과 성욕에 인한 경우라면 남는 것은 오직 파멸과 허무뿐일 젓이다. 그리고 간통을 다른 측면, 즉 당사자 아닌 배우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용서하지 못할 사랑의 배신이며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성과 가정의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간통이 범죄가 되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범죄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간통의 이중성에서 오는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간통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 사랑하여서 간통한다는 이론은 그 이유야 어떻든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고광우 서울지검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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