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솔직해야 할 「에너지」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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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류 대책이 다시 발표되었다. 그 동안 각 부처가 발표한 것을 다시 모은 종합 대책이라지만 구체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는 시책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원유 감량폭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상, 소비 절감폭을 계량화해서 발표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으나, 그만큼 국민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솔직히 말하여 유류 대책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이해가 힘드는 그러한 대책으로 지금의 유류난을 합리적으로 이겨 나갈 수 있겠는지 문제다.
유류 대책의 초점은 유류 소비 구조에서부터 산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체화시키지 못하는데서 논란이 생기고 있다.
유류 소비 구조로 보아 산업용·발전용, 그리고 수송용이 75%를 점하는 것이라면 산업용 유류를 대담하게 줄이는 작업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실효 있는 절감책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경제에 피해가 가장 적은 것부터 대담하게 줄여 나가는 작업을 과학적·계수적으로 서둘러 국민 앞에 제시해 주기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용이 줄어들면 자연히 발전 수요와 수송 수요가 줄게 되어 누적적인 절감 효과가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를 외면하는 유류 대책은 사실별 기대를 걸 만한 것이 못된다.
물론 산업용 유류를 대담하게 줄일 때 파생되는 경제 규모의 축소 문제를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원유 공급이 계속 줄어들 것이며, 또 유류 파동이 장기화할 전망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산업용을 줄여야 할 상황은 불가피하게 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사태가 그러하다면 지금부터 핵심 문제를 다뤄 나가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다음으로 가정용·「아파트」용 그리고 「빌딩」용 유류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한 대책의 발로가 아쉽다. 형식적인 신고를 받는 것만으로는 아무 실익도 없었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는 만국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대책의 발표는 쓸데없는 불신감만 조장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므로 이들 수요자들에게 건물 면적이나 가족 수에 비례해서 최소한의 유류를 할당해 주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유류 공급 중단은 불가피하다는 사정을 알려 스스로 대비책을 세우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어느 쪽도 아닌 대책이 발표됨으로써 우선 전열기를 사용해서 사태를 관망해 보자는 안일한 소비자들의 자세가 나오게 되어 전력 소비를 격증시키고 있다.
지금처럼 유류 가격이 비싸고 또 앞으로도 오를 것이 분명하다면 유류는 더 소비하면서도 난방비는 오히려 적게 드는 전기 난방이 더욱 확대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절감 방안이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들에게 유류를 최소한이나마 할당하여 전력 소비로 대체되는 것을 막든지, 아니면 석탄으로 대체하도록 유류 공급이 불가능한 실정을 알려주든지 분명히 해주어야 하겠다.
석탄 공급 능력에 여유만 있다면 상대적 부유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소비자에 「보일러」 대체용을 감수케 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그렇게 부당하다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유류 대책은 그것이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그 내용이 좀 더 분명하고 솔직해야만 실효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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