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이 맺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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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부들이 시작도 끝도 없는 살림살이 속에서 여가를 내어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주위를 밝고 곱게 채색하며 알찬 생활을 꾸려가는 주부들의 마음을 볼때 높이 존경하고싶고 더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오래 전 「손거울」을 통해 멀리 부산에 살고있는 한 가정주부를 알게 되었다.
살림에만 쫓기다보면 자칫 감정이 무디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서로 부담없이 생활속의 얘기들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자는 편지를 받고 그 내면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마음에 깊이 감동을 했었다.
일손 틈틈이 써 보내오는 그편지 속엔 한가정의 현숙한 아내로서, 다정한 엄마로서의 고충과 재치와 높은 지성이 담겨있어 하나같이 아름답고 값지며 유익한 대화들이다.
이렇게 1년가까이 대화를 나누어온 사이에 이제는 친자매처럼 다정해 져서 매달 월간지도 보내오는 내겐 고맙고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었다.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기만 하기가 미안해 얼마전에 김장양념에 보태라고 마늘과 밤을 약간 보냈더니 또 마른멸치 한상자가 소포로 왔다.
이 고마운 정성을 앞에 놓고 엄마랑 언니랑 둘러앉아 퇴색되지 않은 먼도회의 정을 마음깊이 느끼며 흐뭇한 얘기꽃을 피운다.
이 보답으로 나는 하얀 눈속에 피는 농촌의 겨울얘기와 유리알처럼 맑은 이 산속의 공기를 가득히 편지속에 실어 보내고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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