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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프랑스인의 배꼽 아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7호 29면

프랑수아 올랑드(59) 프랑스 대통령이 자국 정치지도자들의 ‘은밀한’ 전통에 합류했다. 타블로이드 주간지 클로저는 10일(현지시간) 올랑드가 여배우 쥘리 가예트(41)와 수시로 밤을 함께 보내 왔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아파트 앞에서 검은색 헬멧을 쓴 채 스쿠터에서 막 내리는 올랑드, 잠시 뒤 그 아파트에 들어가는 가예트의 사진 등을 7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가예트는 올랑드의 열렬한 지지자로 2012년 대선 유세기간 중 “참으로 소박하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인물”이라고 올랑드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궁은 “사생활 침범에 대단히 유감이며 대통령도 다른 모든 프랑스 국민과 마찬가지로 사생활을 지킬 권리가 있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 내용을 부인하진 않았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지도자들의 복잡한 사생활로 전 세계에 가십거리를 제공해 왔다. 프랑수아 미테랑(1916~96·재임 1981~95) 대통령은 재임시기를 포함해 오랫동안 ‘두 집 살림’을 했다. 부인 다니엘 구즈(1944~98)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도 루브르·오르세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의 미술사학자 안 핑조(71)와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74년엔 딸 마자린도 낳았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사생활의 일부로 간주해 건드리지 않았다. 미테랑 장례식에 참석한 마자린 사진을 실으며 비로소 기사화했다. 타블로이드 매체의 보도로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태였다. 마자린은 부친 사후 10년이 지난 2005년 성을 핑조에서 핑조미테랑으로 바꿨다.

니콜라 사르코지(59·2007~2012 재임) 전 대통령도 화제가 무성했다. 첫 부인 마리도미니크 퀼리올리와의 결혼(1982~98)에서 두 아들, 세실리아 시가녜알베니와의 결혼(1998~2007)에서 아들 한 명을 각각 뒀으며 대통령 재임 시인 2008년 띠동갑인 유명 가수 카를라 브루니와 결혼해 딸 한 명을 얻었다. 두 차례 이혼의 원인이 모두 새 애인의 등장 때문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선 배꼽 아래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게 불문율이다. 게다가 법적 보호까지 받는다. 헌법에 ‘모든 개인은 사생활 보호의 권리가 있다’고 못 박은 건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사생활보호법을 두고 있다. 당사자 승낙 없이 사생활의 세세한 부분을 공표하거나 출판물에 실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의 사생활을 다룰 때 프랑스 언론은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 중요한 건 프랑스에선 사생활이 개인의 사회적·정치적 명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표 성향에도 별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아무리 정적이라도 상대의 사생활을 문제 삼진 않는다. 올랑드의 염문이 보도된 뒤에도 이를 입에 올린 정치인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굳이 코멘트를 요청받으면 ‘모든 프랑스 국민은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BBC방송은 정치인의 사생활을 공인의 기본으로 여기는 영미권은 이런 프랑스에 경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미권에선 서로 종교, 정치 성향, 성적 취향을 묻지 않는 것이 에티켓인데도 배꼽 아래에는 민감하다. 반면 개인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은 성추문으로 대통령을 탄핵까지 하려 했던 미국을 “가식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도도한 문화적 차이다. 한국의 위치는 둘 사이에서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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