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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참치왕, 홍콩 스시왕 누르고 3년 연속 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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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참치왕’ 기무라 기요시가 지난 5일 새해 첫 참치 경매에서 낙찰받은 230㎏ 참다랑어로 회를 뜨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일본 초밥집에서는 새해 처음으로 회를 뜨는 참치의 배에 욱일승천기 그림을 붙여 풍어와 행운을 기원하는 게 관례다. [도쿄 AP=뉴시스]

“아직 3대 4.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요.”

 ‘일본 참치왕’ 기무라 기요시(木村<6E05>·61) 사장은 껄껄 웃었다. 지난 5일 새벽 신년 첫 참다랑어(참치·일본에선 ‘구로마구로’라 부름) 경매에서 230㎏짜리를 736만 엔(약 7400만원)에 낙찰받은 그다. ㎏당 3만2000엔(약 32만원). 결코 싼 금액은 아니지만 지난해 ㎏당 70만 엔에 비하면 20분의 1에 불과하다. 신이 난 기무라 사장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웃음을 지으며 경매가 열린 쓰키지(築地) 수산시장 인근 자신의 초밥 체인점 ‘스시잔마이’로 참치를 싣고 갔다. 그러곤 직접 대형 칼로 회를 뜨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초밥으로 만들어 고객들에게 속살(아카미) 134엔, 옆구리 살(주토로) 313엔, 오토로(대뱃살) 418엔의 염가에 제공했다. 참치 한 마리에 초밥은 8000~9000개가 만들어져 6일 저녁에는 동이 났다.

 참치를 유난히 즐기는 일본인들에게 새해 첫 경매에서 누가 최고 참치를 낙찰받았는가는 최대 뉴스다. 당장 고객들은 “운수에 좋다”며 그 업체의 참치를 찾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지난해 1월 5일 처음 낙찰된 참치로 초밥을 먹었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당장 경매에선 손해를 보더라도 그 선전효과는 대단하다. 아니 몇 배의 효과를 거두곤 한다. 신문·TV 등 모든 매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무라 사장이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2008년부터 새해 첫 참치는 ‘이타마에(板前) 스시’가 2011년까지 4년 연속 휩쓸어갔다. 이 업체는 일본 내에서 5개 점포를 운영하긴 하지만 오너는 홍콩의 리키 첸(46) 사장. 주로 홍콩·대만 등 동남아에서 일본 음식점을 운영하는 큰손이다. 엄청난 자금 동원력을 무기로 2008년에서 2011년까지 참치 낙찰가를 607만 엔→963만 엔→1628만 엔→3249만 엔의 5배로 올려놓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홍콩 스시왕’. 그는 낙찰받은 참치를 비행기에 싣고 홍콩의 가게로 가져갔다.

 여기에 발끈한 게 기무라 사장. 그는 “참치의 자존심을 외국 자본에 빼앗길 수 없다. 반드시 일본으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1979년 창업해 일본 내 53개 초밥 체인을 거느리는 업계의 풍운아인 그에게 거는 일본 내의 기대도 대단했다. 새해 첫 참치 경매를 놓고 ‘홍콩 스시왕’과 ‘일본 참치왕’이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 이때 시작된 것이다.

 기무라 사장은 당장 2012년의 첫 경매에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되는 ㎏당 21만 엔의 입찰가로 참치를 따냈다. 그러나 진검승부는 2013년이었다. 복권을 노리는 ‘홍콩 스시왕’은 연합전선을 폈다. 도쿄의 최고급 초밥점인 긴자 규베(銀座 久兵衛)와 손잡고 공동입찰에 나섰다. “참치를 낙찰받으면 홍콩으로 가져가지 않고 3·11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에 기증하겠다”고 사전 예고까지 했다. “참치마저 중국세력(홍콩)이 다 휩쓸어간다”는 여론이 일본 내에 비등해지면서 ‘중국 대 일본’의 싸움이 된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판돈’을 제공하는 건 ‘홍콩 스시왕’ 리키의 몫. 리키는 ‘풀 베팅’의 승부에 나섰다.

기무라 기요시가 새해 첫 경매에서 낙찰받은 참다랑어로 만든 초밥. [도쿄 AP=뉴시스]

 경매는 ㎏당 2만 엔에서 시작됐다. 경매에 나온 참치는 222㎏. 환산하면 ㎏당 55만 엔이 홍콩 쪽의 상한이었다. 홍콩 측은 30만~40만 엔 선에서 이길 줄 알았다고 한다. 원래 경매는 10초 내로 승부가 갈린다. 그런데 서로가 양보하지 않고 가격을 올리면서 경매는 2분 넘게까지 가는 치열한 각축전이 됐다. 호가가 상한인 55만 엔을 넘어서자 홍콩 측 대리인인 야마구치는 일순 망설였다. 하지만 “초과한 금액은 내가 뒤집어쓴다”며 ‘일본 참치 대왕’ 기무라에게 맞서기로 결심했다. 계속 호가가 올라가면서 야마구치는 ‘최후 한도’라 여긴 ‘68만 엔’을 외쳤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그러나 기무라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바로 “70만 엔”으로 되받아쳤다. 승부는 여기서 끝났다.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항공자위대 근무→수산회사 취업→도시락판매 사업→초밥 체인 창업을 거치며 몸에 익힌 승부사 기질이 몸에 밴 기무라 사장의 압승이었다.

 결국 낙찰가는 참치 1마리에 1억5540만 엔(당시 환율로 약 18억8000만원). 사상 최고가였다. 하지만 기무라 사장이 이끄는 ‘스시잔마이’ 체인은 지난 한 해 동안 화제가 이어지면서 매출이 220억 엔으로 전년 대비 30억 엔(16%) 늘었다.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올해는 지난해의 내상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홍콩 스시왕 리키가 경매 전부터 “올해는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며 꼬리를 내린 상태였다. 올해 참치 낙찰가 폭락은 지난해 대박을 챙긴 동료 모습을 본 참치 최대 인기어장 아오모리(靑森)현 오마(大間)의 어민들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오마의 어부들이 연말연시 연휴도 반납하고 너도나도 대거 출어에 나서는 바람에 참치 공급이 확 늘었고, 이를 파악한 경쟁업체들이 무리한 경매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치를 잡은 어부는 낙찰가의 80%가량을 가져간다.

 기무라 사장은 “ 첫 오마산 참치가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일본인들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며 “내년 경매도 승리는 내 몫”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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