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르크·데무스」 피아노 독주를 듣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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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 「피아노」계의 일선에서 가장 활약이 큰 중견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인 「오스트리아」의 「데무스」가 두번째 내한, 한국의 청중들에 흐뭇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유화하고 세련된 감각과 중후하면서도 섬세한 표정으로 차분히 노래해주는 그의 음악에서는 끝없는 환상과 더불어 도량 있는 포용력과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그는 외형을 화려하게 꾸미는 「쇼맨」적인 기질이나, 압도적인 중압감으로 청중을 억압하는 그러한 체질도 아니다.
품위 있는 신뢰감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듯 주제를 밝게 부조해주는 높은 감성도 그렇지만 정교한 수법과 표현력으로 작품성을 성실하게 추구해 가는 지적인 시성에서 폭넓은 그의 음악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주관을 앞세운 거장적인 과거의 「스타일」도 아니고 요즘 흔히 보는 기교에만 치우친 연주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품을 내공하는 견고한 구성 속에 깊은 서정과 풍만한 음 감으로 인간의 노래를 불러주는 예술가다.
그를 「빈」 음악의 대변자처럼 내세운 것도 그의 이러한 단아한 기질에서 오는 것이겠지만「베토벤」의 최후의 「피아노·소나타」 제32번 C단조에서 미끈한 음 감과 섬세한 표현으로 밑바닥에 흐르는 깊은 서정을 폭넓은 해석으로 설득해주어 「베토벤」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명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즉흥곡」(작품90)에서의 우아한 정감도 감명 깊었고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제11번 A장조의 청아한 음 감도 인상적이었다. 「드뷔시」의 『판화』는 색채감이 아쉽기는 하나 깨끗한 「터치」로 처리해주었는데 「데무스」의 자랑인 「바호」나 「브람스」의 많은 작품들을 들을 수 없었다는데 아쉬움을 남긴다. 【김형주(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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