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결산안심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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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감사권이 없는 국회는 예산심의자료를 발굴한다는 뜻에서도 철저한 결산심의를 할 것으로 기대됐었으나 예결위는 13일 이틀간의 종합심사를 별 성과 없이 매듭짓고 말았다.
이는 필경 결산에 관한 국회 및 행정부의 관계가 분명치 않아 실질적인 결산심의를 사실상 한번도 해본 일이 없는 지난날의 관례 때문에 이번에도 결산심의에 임하는 국회 및 행정부의 자세는 다같이 적당 주의에 흐르고만 것이라고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산심의를 철저히 하지 않고, 예산안심의에만 열을 올리던 그동안의 국회의 타성이 행정부로 하여금 예산집행에 있어서의 규율을 몹시 해이케 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로서는 예산안 못지 않게 철저한 결산심의를 함으로써만, 행정부로 하여금 예산을 당초안대로 집행하도록 구속하는 관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므로 예산의 편성에서 집행에 이르는 재정활동의 전과정을 일일이 점검하는 결산 안 심의는 국회의 다른 어떤 의안심의보다도 성실하고 책임 있게 실시돼야 할 것임을 먼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여 예산이야 어떻게 편성 확정되었건 그 집행과정에서 정부가 적절히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국회의 예산심의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더우기 국정감사권이 없는 현재의 국회로서는 예산에서 결산에 이르는 과정을 철저히 파악하여 예산심의에 반영하는 길만이 국정의 잘잘못을 바로잡아 국민에 대한 그들의 무거운 의무를 다 할 수 있음을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
이번 결산심의과정에서도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삭감된 것이 예비비의 지출로 사실상 부활 집행된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예산안의 국회심의를 존중하는 관례를 확정해 두었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임을 국회 스스로가 반성해야할 것이다.
또 예산의 불용액이 많이 발생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회심의의 소홀에 책임의 일단이 없지 않다.
애당초부터 국회의 심의가 소홀함으로써 행정부가 예산안편성에 신중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 국회심의에서 그대로 간과되기 때문에 불용액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번 결산심의에서 제기된 국가채무의 급속한 증가와 8백억원 수준의 세입결함 문제만 하더라도 예비심의와 직결되는 것임을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 행정부는 재정팽창의 불가피성 때문에 항상 세입예측을 낙관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국회는 이를 엄밀히 검토해서 되도록 세출규모를 줄이도록 견제하는 것이 그 본래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회가 세출을 삭감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종 「로비스트」들 때문에 도리어 증액권고에 더 열을 올리는 한, 세입결함과 국가채무의 격증은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국회심의가 없더라도 행정부는 국가채무수준의 합리적인 관리는 물론, 재정적자 수준의 적절한 억제로 국민경제의 안정기조를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매우 미흡했던 이번 결산심의 과정에서조차 국가채무의 확대, 재정적자의 격증으로 도매물가가 9월말 현재 7·5%나 상승했다는 지적을 받았다면 이는 결코 최선의 재정운영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행정부의 성실만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국회에 예산심의를 맡기는 것이 입헌민주정치제도의 근본취지라 한다면 예산결산에 대한 국회심의의 책임은 곧 입헌민주정치의 양간과도 관련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뜻에서 국회는 앞으로 74년도 예산심의에 있어 보다 과학적이며 계수적인 방법에 투철해야할 것이며, 국회자체로서 평가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공청회라도 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작하는 성의와 연구심을 보여야 할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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