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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그뉴」의 사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스피로·애그뉴」는 결국 미국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정치적 곡절은 어찌되었든, 그의 수뇌 혐의가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것은 권위나 변명으로는 설득할 수 없는, 말하자면 공직 생활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그 사회에선 통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상은 바로 인격적인 「이너선스」 (순찬) 에서 비롯되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애그뉴」가 혐의를 받고 있는 수뇌의 내막은 아직 편편이 알려졌을 뿐이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막연히 『큰 것』이라고만 표현하고 있다. 역시 주간지「타임」은 2만5천「달러」규모로 보도하고 있다. 「원」화로 1천만원에 상당한다. 그것도 하룻저녁에 받은 것이 아니고 수년에 걸쳐 나누어 받은 것의 총액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메릴랜드·엔지니어링」 낙찰 회사로부터도 수뇌를 했다고 전한다. 액수는 미상. 「애그뉴」가 「메릴랜드」주지사로 있을 때의 얘기다.
그밖에 알려진 사실로는 「볼티모」 군수로 재직하면서 (62년∼66년) 어느 낙찰 회사로부터 매달 1천 「달러」씩 받았다는 것이 있다. 우리 나라 돈으로 40만원쯤 된다. 또 1967년엔「체서피크」만 철교의 설계 계약 (8백만「달러」 규모를 알선해 주고 그「커미션」을 얼마 받은 혐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혐의들을 나열해놓고 보면, 우리의 통속적인 감각으로는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 않다. 물론 그런 수뇌를 도덕적으로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규모로 보아 드러난 액수 중 최고 금액이 겨우 (?) 2만5천「달러」, 「원」화로 1천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선 이 정도에도 예외가 없는 준엄한 문화의 화살을 던졌다.
또 「애그뉴」 자신도 그런 학살을 받고 물러나고 말았다. 「부도덕한 권좌」에 앉아있기보다는 차라리 사임으로 속죄하는 선량한 시민을 원했을 것이다. 그것은 여론이나 정치적인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원죄」의 혐의가 있는 한 다른 길이 없었을 것 같다.
미국 역사상 부통령이 수뇌 혐의로 곤경을 치른 예는 몇 건 있다. 1872년 「콜팩스」의 경우 그는 하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한 철도 회사로부터 20주에 해당하는 주식을 수뢰한 혐의를 받았었다. 또 의회 교체 위원장으로 있을 때 한 청부업자로부터 선거 대금조로 4천 「달러」를 받은 사실도 문제가 됐었다.
이런 전통은 그 나라 정치인의 절도와 규범을 이루는 기준이 되고 있다. 가령 수뇌는 그 액수에 상관없이 악덕이며,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계율을 정치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스스로 『깨끗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한다. 수뇌 액수가 적다는 따위의 감상적이고 이기적인 변명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우리의 눈엔 더욱 돋보인다. 그래서 그 사회는 여전히 건강한 것이다. 「애그뉴」 사건의 교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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