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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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도심에서 하수구가 잇달아 폭발했다. 두께 10㎝의「시멘트」덮개들이 퉁겨 나오고, 이웃의 유리창이 깨어졌다. 게다가 불길까지 솟아올랐다. 인명의 피해가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일이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폭발」을 한 것을 보면「개스」가 압축되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것이 무슨「개스」인지는 면밀한 조사를 필요로 한다. 원인은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하수구에선 끊임없이 부패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 때에 발생하는「메탄·개스」는 여간 위험하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개스·라이터」의 원리는 그 위험을 아주 축소시켜 응용한 것이다. 조그만 충격으로도「개스·라이터」엔 불이 당긴다.
하수구에서 발생하는「메탄·개스」도 밀폐된 상태로 놓아두면 그것이 바로 사고의 위험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나중엔 폭발하면서 발화하게 된다.
70년4월 일본의「오오사까」에서도 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었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생한「메탄·개스」가 폭발, 80여명이 삽시간에 생명을 잃었다. 그 당시 사고현장을 공중 촬영한 사진을 보면 흡사 폭격을 당한 전장 같았다. 그 육중한 철판들이 비산하고 불기둥이 지하철 공사장을 따라 일렬로 솟아오르고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오오사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조건이 그와 같으면 똑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서울 도심에서의 사고는 그것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도시구조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지하 심층엔 지하철 동굴이 지나가고, 그 위엔 하수도가 가설되며, 또 그 옆으론 전화선의「터널」이 설치되어 있다.
하수구도 도시과밀의 현상 때문에 마치 우리 신체의 모세 혈관처럼 세분되고, 또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런 하수구에서 발생하는「개스」를 과학적으로 소통시키지 못하고 밀폐·압축해 두면 언젠가 폭발하여 대 참사를 빚을 것이다.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은 거의 복개되었다. 그러나 이 복개된 청계천 위로는 잇달아 도로가 설치되고, 또 그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이 청계천의 복개부분이 폭발한다면 비록 가정일망정 전율을 금할 수 없다. 그때의 참사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절한다. 좌우로 임립·밀집해 있는 시장하며, 그곳의 주민 및 통행인들하며…실로「공포의 청계천」이다.
문제는 도시건설공사의 불성실에 있다. 「시멘트」구조물들은 그럴 듯 해 보일지 모르나, 이 속에 내재한 모순들은 얼른 눈에 보이지 않으며, 느낄 수도 없다. 따라서 건설업자들은 적당히 눈가림을 하기 쉽다. 이런 공사는 결국 인명경시의 건설로 끝나고 만다. 도시의 건설은 두말할 것 없이 시민의 편리와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폭발물 위에 놓여 있는 행복과 편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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