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4)사라지는 서민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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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추석과 함께 애연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 왔다. 언젠가는 백조·금잔디 등 값이 싼 담배가 없어진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금관과 희망 등 이른바 서민담배가 사라진다는 것. 또 비둘기·신탄진·아리랑의 생산을 줄이고 대신 비싼 은하수·청자 등 고급담배를 더 증산하리라는 얘기다. 될수록 고급담배를 피우라는 전매청의 배려를 그대로 고맙게만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언제나 기발한「아이디어」로 애연가들을 골탕 먹여 온 전매청인지라 단순히 보기 어려운 씁쓸한 인상을 안겨 준다. 으레 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배를 내놓고 기왕의 담배는 슬쩍 질을 떨어뜨리는 솜씨를 여러 차례 되풀이 해 오지 않았는가.
그때마다 애연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담배를 피워 온 셈이다. 말하자면 애연가들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담배를 선택하기보다도 언제나 전매청의 시책과 취미에 순종해 왔다는 얘기다. 이번 경우만 하더라도 값싼 농 초와 서민 초를 깨끗이 없애고 고급담배를 증산하리라는 계획도 얼핏 수긍이 가질 않는다. 하기야 우리의 경제사정이 호전되었으니 좀더 좋은 담배를 피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속셈인지 모른다.
이러나 서민층의 소득이 무조건 비싼 담배를 피울 수 있을 만큼 향상되었는지 의문이다. 소비억제를 위해서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전매청은 누구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인플레」와 함께 흔들리는 서민생활에 더 큰 금을 그어서는 안될 일이다. 기왕 있는 서민 초를 굳이 없애면서까지 고급담배를 증산하려는 뜻은 결코 환영될 수 없다. 세수를 감안 하면서도 얼마든지 소비대중을 보호해야 할 전매청은 좀더 넓은 도량으로 공익성 있는 생산계획을 추진할 수는 없을까.
윤병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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