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출판] 인물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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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즐겨 읽는 책 중에 위인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은 단연 백범 김구인 듯하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만 1백38권 정도다. 이어 세종대왕 95권, 이순신 57권, 간디 39권 순이다.

그러나 성장기에 부모의 강권으로 위인전기를 읽는 탓인지 국내에서 전기.평전에 대한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다. 논픽션에서 인물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 남짓이다.

물론 2000년을 1백%로 볼 때 2001년에는 1백36%, 2002년에는 3백45%로 판매량이 증가했고 올 들어서는 다양한 인물이 선보이고 있어 성장 가능성은 엿보인다.

최근 몇 년간 판매량이 높은 인물이야기를 보면 시대적인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1999년에는'김영삼 회고록'(백산서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기인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선일보사), 싱카포르 기적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리콴유 자서전'(문학사상사)이 화제였다. IMF 사태 이후 경제회생을 이끌 리더에 대한 요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 들어 인물이야기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이 붐을 이끌었다. 혁명이 사라진 시대, 너무도 혁명적인 인물 체 게바라는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제임스 딘 같은 이미지로 소비됐다.

2001년에는 80년대 민중운동의 세례를 받은 독자를 겨냥해 '마르크스 평전'(푸른숲), '등소평'(김영사), '호치민 평전'(자인) 등이 줄을 이었다. 9.11테러의 여파가 아니었다면 보기 힘들었을 '오사마 빈 라덴'(명상) 전기도 눈길을 끌었다.

2002년에는 스포츠 스타와 정치인의 전성기였다. 홍명보.히딩크.김남일 등 월드컵 스타를 다룬 책이 차례로 나왔다. 정치의 계절답게 노무현.정몽준.이회창 등 대통령 후보의 책도 나란히 서점에 깔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링컨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드러내고자 했던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 이후 올해에는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함께읽는책) 등 링컨에 대한 조망이 활발한 것도 특징이다.

역대 대통령마다 회고록을 출간해 아예 '대통령 전기'라는 장르가 따로 존재하는 미국 등 출판 선진국에서는 평전 문화가 활발하다.

우리의 경우 인물 이야기가 미성숙한 가장 큰 원인은 고백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인물 이야기가 위인전 수준에서 벗어나자면 자기반성적인 솔직함을 갖춰야 한다. 대중이 영웅이나 위인을 추종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한미화(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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