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성 리더 40년 악연 … 방글라데시 대혼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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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투표소 근처에서 군인들이 경계를 펼치고 있다. 야권의 불참 속에 총선이 치러진 이날 투표소 130여 곳이 방화로 불타고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로 최소 13명이 숨졌다. [다카 로이터=뉴스1]

5일 치러진 방글라데시 총선이 예상대로 집권당인 아와미연맹(AL)의 압승으로 끝났다. “누가 이겼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이 궁금하다”는 영국 BBC의 선거 총평처럼 어차피 결과는 뻔했다. 최대 야당인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이 불참하면서 총 300개 선거구 가운데 153개 선거구에선 AL 및 친여정당의 후보가 단독 입후보로 당선된 상황. 남은 147개 선거구 역시 야당의 투표 보이콧 속에 여권 후보가 싹쓸이했다. 투표일까지 야권 지지자들의 투표소 방화 등으로 1996년 총선 때 투표율 26%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선거 불복은 예정된 수순이다. 앞서 현지 영자지 다카 트리뷴에 따르면 유권자 77%가 BNP 불참 속에 치러진 이번 총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말 공정성 보장을 위해 총선용 과도정부 구성을 요구했던 야권은 거리 시위를 이어갈 기세다. 지난 두 달간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로 2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통틀어 507명이 사망하고 2만2000여 명이 다쳤다.

 방글라데시 여야 대립은 집권당과 야당 연합을 이끄는 두 여성 리더의 뿌리 깊은 악연과도 관계 있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독립 이래 19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현직 대통령이 두 차례 피살됐다. 현 여야 여성 리더는 피살된 두 명의 대통령과 각각 관련 있다.

 2009년 집권한 셰이크 와제드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 독립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딸이다. 라만은 75년 군사 쿠데타로 피살됐는데, 외국에 있던 하시나와 여동생 등 두 딸을 제외하고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당시 쿠데타 주역 중 한 명이 지아우르 라만 장군으로 현 BNP 당수인 베굼 지아 칼레다의 남편이다. 라만 장군은 77년 대통령에 오르지만 81년 또 다른 군부 세력에 피살당했다.

 두 여성의 인생 유전이 공감대를 자아낸 걸까. 81년 방글라데시로 귀국한 하시나는 AL 당수에 추대돼 BNP의 당수 칼레다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연합해서 후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91년 총선 맞대결 결과 이슬람 성향의 BNP가 승리해 칼레다가 첫 방글라데시 여성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로도 둘은 엎치락뒤치락 선거를 통해 각각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하며 팽팽한 세 대결을 벌여 왔다. 선거에 앞서 하시나 정부가 칼레다 당수를 사실상 가택 연금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국민 90%가 이슬람교도인 방글라데시에서 최대 이슬람정당인 ‘자마트-에-이슬라미’를 둘러싼 정치 탄압 논란도 있다. 세속주의 성향인 AL과 달리 BNP는 자마트-에-이슬라미와 협력 관계를 다져 왔다. 그런데 하시나 정권은 지난해 말 자마트-에-이슬라미 주요 지도부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 당시 독립에 반대하며 파키스탄 측에 부역하고 대량 학살과 성폭행을 자행한 혐의다. 야권은 이것이 총선을 겨냥한 정치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인구 1억6300만 명의 방글라데시는 최근 5년간 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시나 정권은 경제 성장을 치적으로 내세우려 한다. 하지만 세계 수출 2위를 자랑하는 이 나라 의류산업은 저임금과 산업재해로 악명이 높다. 2012년 12월 타즈린 의류공장 화재와 지난해 4월 대형 의류공단인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각각 112명, 1130명이 몰살당하면서 열악한 근로환경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가 줄이었고 야권은 이에 동조했다. 집권당은 야권이 사회 불안과 경제 후퇴를 야기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글라데시 정치권이 타협과 협력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은 80년대 이후 봉제산업을 중심으로 220여 개 업체가 방글라데시에 진출해 있다.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주요 수출국 중 7위에 해당하며 2012년 교역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1100억원) 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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