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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도 배려해 주세요, CEO 대하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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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선구 기자 중앙일보 시사매거진제작담당
정선구
경제부장

참, 묘하게도 지도자를 직접 대면하고 나면 나름의 매력을 느낀다. 지지율이 높든 욕을 먹든 간에. 삶의 궤적이 풍운아적이면 더욱 그렇다. 젊은이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내가 혁명했을 땐 말야∼” 하며 늘어놓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금세 함몰되는 기분이다.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불같은 성미를 보이다가도 조그만 성과를 낸 일에 대해 “어때? 나 이만하면 잘했지요?”라는 그 유머와 익살스러움. 아무 직책이 없던 시절, 몇몇 기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일 때도 갑자기 한 중년 부인을 불러내고는 “집사람이야”라고 소개해 좌중을 뒤로 넘어가게 만들기도 했으니.

 지지난주 만난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이 꽂혀도 단단히 꽂힌 모양이다. “이런 대통령이라면 한껏 치켜세울 만하지 않은가”라며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역대 세 분 대통령의 청와대 행사를 모두 경험했다는 그의 사연은 이렇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행사 시작 45분 전까지 가면 됐습니다. 노 대통령은 메모도 열심히 하면서 코멘트를 자주 하는 편이었습니다. 청와대 행사는 이명박정부 시절 크게 바뀌었습니다. 세 시간 전까지 가야 했죠. 집합장소도 청와대가 아니었어요. 경복궁 동문 앞에 집결,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버스로 이동했고, 청와대로 들어와서도 두 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대통령이 주로 말을 하는 편이다 보니 회의 시간도 과도하게 길어졌고. 그 뒤 청와대 사람에게 ‘정말 바쁜 사람들을 세 시간 전에 오도록 하면 대통령을 욕먹게 하는 거다’라고 간언했더니 어떻게 바뀐 줄 아십니까. 겨우 30분 단축, 2시간30분 전 집합으로요. 그랬던 것이 박근혜정부 때 또 달라졌습니다. 30분 전까지로 확 줄었어요. 대통령은 참석자들이 말을 많이 하게 했습니다. 예정된 행사 시간이 끝나도 길어야 5분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 CEO는 참석자들을 일일이 배웅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도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청와대로부터 미리 받아본 초청장에 수행비서와 운전기사의 식사장소까지 안내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이 모든 게 대통령이 일일이 시켜서 나온 행동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 그럼 여기서 박 대통령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야 할까. CEO가 반하도록 행사를 기획한 청와대 참모에겐 상을 줘야 할지 몰라도 대통령에겐 좀 깐깐해질 필요가 있다. 왜? 51.6% 득표율의 대통령으로서 아직도 지지율이 50% 안팎을 오르내릴 뿐이니까. 물론 1987년 이래 과반을 넘는 당선자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지지율이다.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레오니트 후르비치는 40%를 얻은 A가 30%씩 얻은 B와 C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결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도록 다시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51대 49라는 2012년 대선 결과, 정말 절묘하지 않은가. 과반을 훌쩍 넘기면 자만하게 되고, 턱없이 못 미치면 국정운영이 어려우니 말이다.

 세 번의 청와대 행사를 겪은 금융사 CEO를 비롯해 CEO들은 대개 박 대통령에게 찬성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강자보다는 약자, 있는 자보단 없는자들 대부분은 반대 표를 행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 대통령은 51%의 당선자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이들 모두를 감싸안아야 하는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됐다. 현 정부는 철도파업에서 승리했다고 자만하는가. 그래서 계속 강공 드라이브만 걸 것인지. 보수의 날개로 날았으되 진보의 꼬리로 방향을 잡아야 하며, 지지자들을 등에 업었으되 반대파들도 두 발로 움켜쥐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와 함께 박근혜정부 2년차가 시작됐다. 오늘은 박 대통령의 첫 신년 기자회견이 있는 날. 향후 국정 운영을 밝힐 텐데, 49%도 감싸안을 광폭의 화합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청와대에 초청된 CEO들을 대하듯, 국민 모두를 포용하고 배려할 줄 아는 큰 리더십 말이다.

정선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