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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알려진 악재에 급락 … 연초 코스피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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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엔저(低)와 실적 공포.

 새해 벽두부터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두 가지 악재다. 코스피는 문을 열자마자 이틀 연속 하락하며 65.2포인트가 빠졌다. 시가총액으로는 38조원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새해를 맞는 기대감에 통상 연초에는 주가가 오른다는 ‘1월 효과’도 무색해졌다.

 그렇다고 새롭게 등장한 악재는 아니다. 원화 강세는 이미 지난해 중반부터 뚜렷했고, 지난해 4분기 기업 실적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도 꾸준히 낮아져 왔다.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건 방향이 아닌 폭과 속도다. ‘실적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 ‘원화와 엔화의 괴리’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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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닝 쇼크’ 걱정은 비단 삼성전자만을 두고 나오는 게 아니다. 기업들이 거둔 전체 이익 규모가 시장의 예상치(컨센서스)에 크게 못 미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하는 기업 실적은 실제 수치보다는 높기 마련이어서 10% 정도는 깎아서 보는 게 보통”이라면서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실적은 그보다도 더 낮춰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추산한 지난해 4분기 상장회사들의 순이익 규모는 26조원가량이다. 전 분기보다 10%가량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우리투자증권은 1~2월 집계될 실제 규모는 16조원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후려친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단임제 정권의 ‘1년차 증후군’이다. 지난해는 정권이 바뀐 첫해다.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물갈이됐고, 민간기업들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장을 교체했다.

자연히 지난해 4분기 실적에는 기업들의 대대적인 ‘묵은 때 벗기기(Big Bath)’가 반영될 것이란 예상이다. 새 CEO가 전임 경영자가 쌓아놓은 부실을 회계에 반영해 떨어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걸 일컫는다.

 시장에서 이런 ‘빅 배스’가 나타난 대표적 사례로 꼽는 곳은 KB금융이다. 지주사 회장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실적이 급전직하했다가 이후 빠르게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해에도 임영록 회장의 취임 직후 나온 2분기 순익은 전년보다 70% 줄어든 1635억원에 그쳤다. 해외 투자분의 부실 등이 대거 반영되면서였다. 하지만 3분기 이익은 462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금융의 실적이 유독 부진했던 이유도 올해 매각을 앞두고 잠재 부실을 최대한 많이 떨어내 매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청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에 불어닥친 사정 한파, 분식회계 처벌 수위 강화도 어닝쇼크를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해부터는 등기임원이 아닌 오너 회장도 분식회계에 책임이 있으면 등기임원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된다. KDB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잠재적인 부실을 고백한 뒤 떨고 가려는 기업들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엔저’도 새삼스러운 악재는 아니다. 엔화는 이미 지난해 달러화 대비 21.4% 떨어졌다. 문제는 미국이 돈 푸는(양적완화) 속도를 줄이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데도 원화는 이에 아랑곳않고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엔화는 약세 흐름이 더욱 가팔라졌다. 자연히 원화와 엔화의 거리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자동차·전자·기계·철강 업체들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외환은행 서정훈 연구위원은 “양적완화 축소의 효과는 이미 상당부분 반영된 반면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시장에 달러 매물이 계속 쌓이면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양국이 처한 입장 차이도 원과 엔의 거리를 벌려놓는 요인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강화하며 돈 풀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반면 우리 외환당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탓에 주변국들의 눈치가 보이는 데다 ‘내수 살리기’를 올해 경제운용의 주요 목표로 삼은 터라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기가 껄끄럽다. 이트레이드증권 오동석 연구원은 “지난해 7월 이후 원화가 강세라는 한쪽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외환당국은 사실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최근의 원화 강세는 ‘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두 가지 악재 중 ‘부실 떨어내기’는 길게 보면 증시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강현철 팀장은 “올해부터는 기업 이익 전망치가 보다 투명해지면서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엔저’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중제 수석연구원은 “엔화가 연말까지 약세 흐름을 타며 두고두고 증시의 발목을 잡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안지현 기자

◆ 빅 배스(Big Bath)

구석구석 목욕을 해 묵은 때를 벗겨내듯 기업의 부실자산이나 이익 규모를 회계에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경영진 교체 때 나타난다. 특히 국내에선 새 정부가 들어선 첫해에 집중된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노무현정부의 2003년 4분기, 이명박정부의 2008년 4분기에 ‘어닝 쇼크’가 컸던 것도 상당 부분 그런 영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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