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믿음] 덕담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6호 27면

2014년 새해 벽두! 누구나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덕담 한 마디쯤은 건넸을 것이며, 또 누군가로부터 상서로운 축원 한 문장쯤은 얻었을 터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모양인지, 점점 받는 것보다 주는 말이 많아지는 편이다. 또 예전엔 건성으로 듣거나 임기응변으로 말해주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인데 말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요즘엔 한 마디 한 토씨에도 신경을 쓴다. 가급적이면 부정적인 언사를 피하고 긍정적인 단어로만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덕담을 주고받는 전통이 말의 권세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됐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말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주의력결핍장애로 초등학교를 3개월 만에 중퇴해야 했던 에디슨을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어준 것은 “너는 틀림없이 다음에 위대한 일을 할 거란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줬던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 덕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일화다. 들은 말 한 마디로 인생이 바뀐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즉, 삼가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며 한 해의 소원을 품을 즈음 마수걸이 말로 듣게 되는 덕담은 얼마나 가슴 깊이 각인돼 영향을 끼치겠는가.

신년카드를 보면 그 민족의 축원 문화를 대충 알 수 있다. 우리네가 주고받는 연하장을 보면 ‘근하신년’ ‘소원성취’ ‘만수무강’이란 전통 문구들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새 소망’ ‘날마다 좋은 날’로 바뀌어 감을 알 수 있다. 거창한 축복 대신 소소한 일상의 복을 빌어주는 방향으로 변해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비해 체로키 인디언들이 주고받는다는 축원은 무척 낭만스럽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빌어준다. “그대 어깨 위로 늘 무지개 뜨기를(May the rainbow Always touch your shoulder).” 그들에게 무지개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행복? 만사형통? 장수? 명예? 출세? 뭣이 됐건 그것이 하늘의 축복일 것임은 자명하다.

보다 알속 있는 축원 문화를 꼽으라면 모름지기 유대인의 그것을 꼽을 수 있겠다. 아론의 후예들 입을 빌려 빌어주는 강복문 전문은 이렇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기 6:24~26)

좀 긴 듯하지만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보호 내지 액땜. ‘지켜주시리라’는 말은 온갖 위험과 불행으로부터 보호를 바라는 축원을 담고 있다. 둘째는 만사형통.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말은 천우신조로 소원이 이뤄지고 사업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축원을 담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축복을 가리키는 셈이다. 셋째는 평화. ‘평화를 베푸시리라’는 말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태평을 바라는 축원을 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희구가 아니겠는가.

음미해 볼수록 뜻이 흐뭇하여 나는 이 글귀를 족자로 만들어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볼 때마다 그 축복을 마음에 갈무리해 두기 위해서다. 인디언 속담에 ‘같은 말을 2만 번 이상 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는 뇌생리학적 현상으로도 인정된 사실이다. 자신의 뇌에 반복해서 주입된 말은 설령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진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뇌에 각인된 진실이 곧 현실 아니겠는가. 그러니 기왕 주고받은 덕담, 허투루 여기지 말고 반복해서 되뇌어 보자. 길상한 말로 자신의 미래를 멋지게 빚어 보자.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