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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아사다, 욕심 드러낸 말띠 남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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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특파원

남성은 아베 신조 총리, 여성은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아사다 마오 선수.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 신문은 갑오년 말띠 해를 여는 1일자 신문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말띠 유명인으로 두 사람을 꼽았다. 글의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거의 매일 TV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사다 팬들에게서 벼락을 맞을 망언일지도 모르겠지만.

 1990년 말띠인 아사다는 소치 올림픽 개막(2월 7일)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감춰둔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색깔의 메달을 갖고 돌아올 수 있도록 분발하겠다.”

 지난달 25일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으로 기체를 치장한 일본항공(JAL) 소속 항공기 앞에 선 그가 한 이야기다.

 아사다는 “전력을 다하겠다. (올림픽이) 웃는 얼굴로 끝났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란스러운 일부 언론들은 ‘마오의 금메달 선언’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아사다는 “더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싶다”고만 말해왔다. 마음은 금메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탔겠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공개적으로 메달의 색깔을 입에 올렸다. 가장 최근 대회인 전일본선수권에서 3위에 그친 분함 때문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면서 같은 해 같은 달 태어난 라이벌 김연아 선수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다. 두 사람이 뜨겁게 겨룰 소치의 개막을 더 기다려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사다의 ‘작은 도발’은 오히려 유쾌했다.

 비슷한 시기 아사다보다 서른여섯 살 많은 1954년 말띠 아베 총리도 가슴에 담아뒀던 흑심을 겉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집권 1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기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들뜨고 흥분한 그의 표정을 보자니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자제해온 평화헌법 개정론도 폭발시켰다. 지난 연말엔 “내가 무엇 때문에 정치가가 됐느냐. 개헌은 나의 라이프 워크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라더니, 연초엔 “개헌을 위한 국민적 논의를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 “2020년이면 개헌은 이미 끝나 있을 것”이라며 페달을 밟았다. 집권 1년이 지나고 자신감이 붙었는지 말과 행동에 브레이크가 안 걸린다. 아베의 도발은 아사다의 유쾌한 도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봄부터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이 본격화되고, 헌법 개정 준비도 착수된다.

 아사다를 꺾고 챔피언 자리를 지켜야 할 김연아 선수만큼 우리 정부도 숙제와 부담이 많아졌다. 미국과 일본의 안보밀착 속에서 대미외교를 통해 아베의 우경화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걸 수 있는 외교실력이 절실해졌다. 일본의 잘못을 엄중하게 꾸짖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을 모색해야 하는 지혜도 필요해졌다. 김연아 선수와 한국 정부 모두 실수 없이 후회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갑오년이 되길 빈다.

서승욱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