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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김광석, 그의 목소리를 기억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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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살아 있었다면 올해 만 50이다. 1964년생이니, 빠른 65인 나와 동갑이다. 생전에 그의 공연을 숱하게 봤고, 인터뷰도 두어 번 했다. 주변에 그와 친분 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가장 잊지 못하는 공연은 대학로 동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콘서트다. 대학원 시절 같은데, 사실 정확한 기억인지는 자신 없다. 다만 또렷하게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얼마나 목소리가 우렁차고 강단 있으면서도 구슬프게 사무치던지, 노래를 듣다가 당장 그의 성대를 열어 구석구석 뜯어보고 싶다는 엽기적인 망상에 빠졌다. 노랫말도 멜로디도 좋지만 김광석 음악의 본질이란 다른 무엇 아닌 그의 목청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음악이란 결국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영역, 지금 나를 사로잡은 것이 누군가의 머리 아닌 몸이란 생각에 이상하게 숙연해졌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저처럼 몸 쓰는 사람, 머리나 정신이 아니라 육체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했었다.

 어쩐지 싱어 송라이터에 비해 보컬리스트들이 낮게 평가되는 분위기에 열 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물론 김광석은 좋은 곡도 많이 썼다). 싱어 송라이터가 진짜 음악가라면, 보컬리스트는 타고난 목청 하나인 기능인 정도로 내려 보는 시선 말이다.

 지난 연말부터 그의 노래가 유난히 많이 들려왔다. JTBC ‘히든 싱어’에서는 죽은 그와 살아 있는 팬들 사이의 모창 대결이 펼쳐졌다. “제가 방송에 잘 안 나옵니다. 못 나오기도 하고요”라는 생전 영상이 오프닝을 대신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당일 열린 그의 콘서트 장면이 삽입됐다. 그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도 나왔다(이건 너무 실망스럽다. 보시라고 권하지 못하겠다. 김광석 음악은 오직 그의 목소리로 완성된다고 믿어서만은 아니다).

 6일이면 그가 떠난 지 18주년이다. 여기저기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이어진다. 동물원 멤버 김창기는 한 다큐에서 “생전에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지 때론 야속한 생각도 든다”고 했지만, 그건 절친다운 ‘항변’일 뿐 누구나 죽어서 다 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게 김광석은 목소리로 기억되는 별이다. 서른둘에 머문 그의 목소리에는 짧지만 그가 살아온 역사, 시대, 상처와 정서가 녹아 있다. 청아하지만 구슬퍼서 존재의 심연을 건드리는 목소리. 누구나의 안에 숨어 있는 상처를, 소년을 일깨우는 목소리다. ‘서른 즈음에’가 ‘마흔 즈음에’ ‘쉰 즈음에’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유다. 21세기 청년들이 아직도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입대하는 이유다. 다시 올 수 없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그의 목소리에 경배를.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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