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각서예전 갖는 철농 이기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38년을 서예와 전각에 바쳐 온 철농 이기우씨(53)는 백자에 전각과 서예를 곁들인 1백50점의 작품으로 철농 이기우 도각서예전(14일∼19일 신세계 화랑)을 갖는다. 『복중에도 더위를 모르고 지났다』는 철농은 지병으로 불편한 건강을 무릅쓰고 두 달을 이 일에만 전념했다.
도각을 처음으로 시도하여 어려움도 많았지만 독특한 예술의 새 분야를 개척했다는 통쾌함을 그는 감추지 못했다.
도각품만 1백여점. 실제로 그가 만든 작품은 2백80여 점으로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것은 파기 처분했다.
『음각과 양각, 그리고 문장의 선택이나 문자의 배치도 어려웠지만,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도흔(칼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이었다』는 그의 말에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글자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각한 뒤에 유약을 조심스레 발라야 했고, 가마 속의 화력이 알맞게 골고루 퍼져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도요를 맡은 안동오씨와는 작품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도대체 자기에다 글씨를 쓰고 또 그 글자를 새기는 일은 여느 서예나 전각보다 몇십 곱절 힘드는 일이었다. 붓을 받는 바탕이 전혀 달라 마치 붓을 끌어당기는 깃 같았고 글자를 새겨 가는 중에 그릇의 두께가 엷은 곳에 와서 깨어져버리는 일이 흔히 있었다. 올바른 글자를 제대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작품의 전과정에 참여하다시피 해야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지금 철농은 자신의 새로운 예술분야를 개척했다는 벅찬 감격을 가다듬어 이 일에 더욱 정진하겠다는 숙연함을 보였다.
『작가는 입이 아니라 작품으로 말해야한다』면서 철농은 옆에 백낙천의 시가 도각된 명병을 가리켰다. 『와우각상쟁하사석화광중기차신 수부수빈차환락 부개구소시치인』즉 하찮은 일로 다투지 말고 분수에 맞게 웃으며 살자는 내용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