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유학 망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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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전에 영국으로 유학 가는 항해 길에 「싱가포르」들러「싱가포르」대학의 교무처장을 심방 한 적이 있다. 이 분은 「싱가포르」에 일본군이 들어 왔을 때 항일 저항 운동을 벌였던 지식인이며 「싱가포르」대학이 식민지 대학의 성격에서 탈피하도록 노려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말을 하는 가운데서 쉽게 「아시아」인으로서의 공분 즉 백인의 착취정책과 앞잡이 정치 등에 대한 의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대화가 있은 뒤 「싱가포르」인이란 주체정신 없는 상인이라는 나의 생각이 크게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후 내가 타고 있는 배에 「싱가포르」시청 직원으로서 영국으로 유학 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항해 중에 묻는 말이 『한국에도 외국 유학 갔다왔다고 경거망동하는 사람들이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는 외국유학 갔다온 사람이 많지 않고 학문에 있어서 겸손하여야 한다는 한국적 전통이 있다고 하였더니 그 전통적인 정신자세를 대단히 부러워하면서 「싱가포르」가 바로 그러한 정신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말인 즉 「싱가포르」에서 백인치하 당시에 외국 유학 갔다온 친구들은 단결의 저해요인이 되고 심지어 타락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자기는 외국 유학 갔다 온 사람과 이야기하면 그 이기적이고 천박한 생각 때문에 구토증이 난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역시 백인 식민지에 태어났으나 제 정신만은 간직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다.
근래 신문지상에 「싱가포르」수상이 공석상에서 외국유학 망국론을 폈다고 한다. 그가 외국에 유학생을 보낼 필요성을 모를 리가 없고, 특히 과학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당연성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고, 자기 자신도 영국에서 공부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외국유학 망국론이 나왔을까?
원래 서구에 와 있는 유학생들을 보면 출신국에 따라 특색 있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유학생형·호주유학생형·「아랍」유학생형·인도유학생형·「아프리카」유학생형 등이 있는데 「아시아」인 자제의 외국 유학에는 가끔 원대하고도 맹랑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장차 도피하여야 할 가족의 피난처를 마련하고 재산 도피의 계기를 마련하고 도피된 재산의 관리를 담당케 하고 외국대학에서 박사증을 따서 이를 간판으로 모국에서 권좌나 재물을 손쉽게 잡아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지닌 외국 유학이야말로 개발도상국가인 「싱가포르」에 아무런 도움이 될 것이 없고 이광요 수상의 통탄과 외국유학 망국론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의 이 수상 말고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대통령도 생존시 참다못해 외국유학생의 명단을 직접 「체크」하였다고 한다.
외국 가서 과학과 기술을 배우는 것도 꼭 필요하나, 그 이전에 과학자나 기술자가 정신자세를 확고하게 잡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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